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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Oct 26. 2023

집에 오는 길이 너무 멀어~

등교할 땐 10분 안에 간다면서, 집에 올 땐 왜 세월아 네월아?

배경이미지: 2023년 10월 26일, 이틀 전 딸이 반했다는 그곳에 가봤다. 오늘도 나뭇잎을 모아 하늘에 뿌리며 노느라 늦었다던데... 나간 김에 산책하느라 딸이 언제 왔는지 몰랐다. 딸이 아름다운 가을 정취에 넋을 빼앗길만하다.



2023. 10. 24


화요일 낮 12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간 누군가 벨을 누른다. 문을 여니, 사랑스러운 딸이 서있다. 벌써 돌아올 시간인가 의아했다. 딸이 늦어서 미안하단다. 잉? 딸의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학교는 12시에 끝났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800m 정도이다. 등교할 땐 10분 안에 간다면서 왜 집에 올 땐 빨리 와야 15분일까? 한때는 수업 끝나고 학교 놀이터에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매달리고 올라가고 노느라 집에 오는 길이 쭈욱 멀어졌다. 휴대폰도 시계도 없으니 시간의 흘러가는 줄 몰랐다는 딸의 변명을 이해하기도 했다. 


시간을 모른다는 핑계를 없애기 위해 딸에게 손목시계를 채웠다. 딸은 여전히 놀다 보면 시간이 그렇게 잘 간다며 종종 늦었다. 무섭게 혼내기도 하고 용돈을 삭감하기도 했다. 일단 집에 왔다가 나가 놀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시간을 모른다는 핑계가 통하던 때보다는 덜 하지만, 성격 탓인지 여전하다. 호기심, 열정이 넘쳐서 일단 저지르고 혼나는 패턴이다. 비교적 부모의 지침을 잘 따라주는 아들과는 많이 달라 당황스럽다. 우리가 아이들을 일일이 통제하지도 않고 그럴 에너지도 없는데 딸은 왜 그럴까? 아들은 자기 일정에 대해 허락을 가장한 통보를 하며 잘 노는데, 그런 오빠의 자유가 딸에겐 보이지 않나 보다. 


딸은 일단 하고 싶은 건 하고 집엔 늦게 가면 된다라 여기는 것 같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날은 어김없이 문을 열자마자 'I am sorry.'라며 울먹인다. 먼가 자진납세하는 것 같긴 한데 왠지 선재공격 같다. 늦은 핑계는 비슷비슷한데, 가끔 색다를 때도 있다. '시간을 확인하고 조금만 놀자 싶었는데, 신나게 놀다 시계를 보니 1시간이 지났다.', '날씨가 좋다.', 대체로 'I got carried away.'를 포함한 이유를 나열한다. 이번엔 계절을 반영한 귀여운 이유였다. '집으로 오는 길, 놀이터를 지나는데 알록달록한 나뭇잎들이 너무 예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뭇잎을 모아 뿌리며 놀다 보니 늦었다.', 소녀 감성이 넘치는 이유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다음부턴 집에 와서 말하고 나가라 타일렀다.





나: "지금이 어느 계절?"

그: "가을"

나: "가을이 이렇게 춥니? 기온이 2, 3도잖아. 완전, 너무 추워! 젠장 핀란드!"

그: "그렇지만 눈으로 보기엔 가을인걸."

나: "그러게..."


추워서 장 볼 때 빼곤 밖에 안 나가는데 낙엽이 이뻐서 집에 늦게 왔다는 딸의 말에 동네 산책을 했다. 이쁘긴 이쁜데 춥다. 시각적으론 만연한 가을인데, 몸으로 느끼기엔 쌀쌀한 겨울이다. 아이들과 자주 산책하는 곳을 돌며 이 이쁜 풍경을 아이들과 함께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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