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통보를 받았지만, 여전히 갑작스러워 힘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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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이들의 할머니가 우리 집 근처에 볼일이 있어 오는데 온 김에 집에 들러도 되냐고 물으신다고 짝이 내 의견을 물었다. 시간 되면 들르시면 좋지라고 대답했고, 짝이 알아서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잊었다. 오신다고 하신 당일, 보통의 일요일보다 더 늦게 일어났다. 딸이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조금 더 잤다. 그 뒤론 아들과 딸이 부엌놀이로 만든 음식을 침대까지 가져와 내게 먹여줬다. 아이들의 부엌놀이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있을 때 짝의 전화기가 울렸다. 10시 정도였던 것 같다. 할머니는 1시간쯤 뒤에 우리 집에 도착한다는 통보를 하셨다.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 집에 오신다고 했을 때, 비록 몇 시에 오신다고 듣지는 못했지만 일찍 오셔야 오후 1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전에 오신다니! 으아아~ 전화 한 통으로 느긋한 일요일의 아침이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어제 손님 초대로 남겨진 그릇들이 싱크대에 산처럼 쌓여있다. 나는 아직 아침도 먹지 못했다. 일단 밥보다는 싱크대를 먼저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어제 그릇을 다 써서 식기세척기를 돌려야 했다. 할머니가 오셨을 때 쓸 그릇은 손으로 씻어야 할 상황이었다.
짝은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아들과 함께 오셨을 때 내놓을 빵과 주스를 사러 집 근처 가게로 향했다. 아침을 먹지 않은 채로 하는 정리는 다른 날보다 더 더딘 느낌이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벨을 눌렀다. 짝에게 다음부터 아이들의 할머니가 온다고 하시면 오늘처럼 당황하지 않게 몇 시에 오시는 건지 꼭 여쭤보자고 했다. 그는 이번에 자기가 도착시간을 묻는 것을 깜빡했다고 시인했다. 말은 안 했지만 둘 다 할머니가 너무 일찍 오셔서 힘들었다.
전날 하필이면 손님이 와서 정리할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아이들의 할머니가 우리 기준으로 너무 일찍 느닷없이 오셨다. 그래서 그 상황에 화가 났다. 그러나 아이들의 할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으신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보면 아이들 할머니 기준으로는 오신 시간이 적당한 시간이었을 거다. 그 나이에는 이른 시간이 아닐 법해서 무례를 범했다고 할 수 없지만, 내 입장에서는 무리였다. 내게는 너무 이른 방문 시간이었으니까. 게다가 나는 아침에 밥 먹기 전까지는 상당히 예민하다. 밥도 먹지 못하고 주방을 정리했으니...
아이들의 할머니 입장에서는 당일치기로 하는 방문이니 일찍 오셔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충분하길 바라셨을 거다. 아마 마음 같아서는 9시에 달려오시고 싶으셨겠지만 나름 우리를 배려해주신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좀 과했다. 사실 오후에 오실 줄 알고 나는 오전에 딸을 목욕시키려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저녁에 약속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나름의 계획이 있었는데 다 틀어져 버렸다. 어쩌겠는가? 삶이 그런 것을... 화가 나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을... 그저 우리는 다 다른 사람이니까, 다 다른 생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위해주니까, 그래서 의도치 않은 부딪힘이 있는 것을...
오후 한 시 반이 지나자, 짝이 딸이 짜증을 많이 부리는 게 피곤한 것 같으니 낮잠을 재우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내 저녁 약속을 상기시키며, 목욕을 시키면서 아이를 쉬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짝에게 말했다. 그때가 아니면 딸 목욕시키는 시간이 마당치가 않았다. 짝은 아이들의 할머니에게 딸을 목욕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불현듯 아이들의 할머니와 할머니 남자 친구가 일어서는 분위기가 되었다. 아이들의 할머니는 헤어지기 전에 늘 우리의 가족사진을 찍겠다고 하신다. 나는 딸을 목욕시키는 동안도 계실 줄 알고 아이 목욕시킬 준비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족사진이라니! 부랴부랴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투닥거리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두 분이 휑하니 가셨다.
할머니가 가신다고 하는데도 방에서 인사만 하는 무례한 아들을 불러 가실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목욕할 맘에 신이나 몸과 맘이 욕실로 향하는 딸을 문 앞으로 데려와 할머니를 안아드리고 인사하라고 달래야 했다. 내가 아이들의 할머니라면 왠지 서운할 것 같았다. 딸을 씻긴 뒤, 짝에게 아이들의 할머니를 내쫓은 기분이라 맘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짝이 우리도 우리 생활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짝의 대답이 내게는 맘 편한 대답이었지만, 찝찝했다. 내 아들이 짝의 저 무심한 태도를 배워서 나를 그렇게 대할까 두려웠다. 난 내 아들이 오늘의 짝이 쫓겨나듯 돌아간 자신의 엄마에 대해 우리의 삶도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처럼 나를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짝의 무심함에 그의 어머니가 안쓰럽다.
할머니가 가져오신 것 중 단연 큰 물건은 딸의 장난감 상자였다. 아들은 한 살 때 짝의 삼촌이 직접 만드신 장난감 상자를 받았다. 이번에 가져오신 딸의 장난감 상자는 아들의 것보다 단순한 모양이었지만, 그 나름의 멋이 있다. 할머니랑 할머니 남자 친구가 직접 만드신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페인트만 칠해 놓으셔서 짝이 시간 날 때 바니쉬를 칠해 마감을 해야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들 상자는 받았을 때 이미 마감도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장난감이 들어있는 달걀 초콜릿과 큰 젤리 봉지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셨다. 모두를 위한 아이스크림도 한 통 사 오셨다. 우리에게도 선물 꾸러미를 내미셨는데, 초콜릿과 박하사탕이 들어 있었다. 짝이 단 거를 좋아하니까 늘 단거를 주시는데 사실 난 그다지 주시는 선물이 반갑지 않다. 단거를 좋아하지도 않을 뿐 더라 아이들이 단거를 너무 많이 먹는 거 같아서 싫다. 머 그래도 원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특권이 부모가 잘 안 사주는 사탕이나 과자를 맘대로 사주는 거라 생각해서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쓴다. 일일이 무엇인가 확인하다 보면 살짝 화가 나기 때문에 무엇을 주시는지 잘 안 본다.
저녁 약속 후에 장을 봐서 집에 돌아오니 아홉 시 반쯤 되었다. 짝이 아이들을 이미 다 잘 재워놨다. 멋쟁이! 그런데, 일반 젤리보다 엄청 큰 젤리 몇 개가 짝의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짝에게 젤리를 가리키며 아이들이 할머니에게서 받은 젤리가 저거냐고 물었다. 짝은 맞다며 그런데 너무 과해서 아들과 둘이 먹다가 나중에는 메슥거려서 그만 먹게 되었다고 했다.
아무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특권이 단거를 맘대로 주는 거라지만 이번에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단거 사주시는 것 맘에 들지 않는데, 그래도 특권이라고 관대해지려고 애쓰는데 정말 아니다 싶었다. 결국 짝에게 아이들 할머니와 담에 통화하게 되면 저렇게 큰 젤리가 들어있는 큰 젤리 봉지는 사 오지 마시라고 하라고 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지나치다고... 짝도 먹기 버거운데 아이들에게 진짜 과하다고... 내가 말하는 거보다는 짝이 말하는 게 덜 기분 나쁘실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