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임을 즐기면서 정작 내 부모님은 잊어버린 바보 같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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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어버이날, 아... 지금 쓰면서 깨달았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전화드리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가을이면 15년이 된다. 이 나라에 정착한지는 13년이 다되었다. 한국의 모든 것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때도 많고 한국 달력의 이런저런 날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페북 친구가 어버이날을 그냥 지나쳤다며 뒤늦게 부모님께 고마움을 전하는 글을 페북 담벼락에 써놓은 것을 보고도 그렇구나 하고는 미처 내 부모님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치 나와는 관련 없는 날인 것처럼... 나도 부모님이 계신데... 에효...
핀란드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 날이다. 그리고 아버지 날은 11월 둘째 주 일요일에 따로 챙긴다. 어린 시절 어버이날 전 즈음 학교에서 부모님께 드릴 편지 쓰기나 카네이션 만들기를 하던 것처럼, 이곳도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을 위한 무언가를 준비시킨다. 조그만 아이들을 달래 가며 정성스레 무언가를 준비하는 선생님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간 뒤 처음 있는 어머니 날이라 초등학교는 어떨지 확실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봐왔던 기억으로는 감사 카드를 만들게 할 것 같다.
한글학교에서는 지난주에 카네이션 만들기를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가지 색을 골라 카네이션을 만들었는데 반해 색지를 과감하게 섞어서 만든 꽃을 내게 건네는 아들... 색을 고르고 조합하는 아들의 재주가 놀랍다. 나라면 시도하지 않을 시도를 거침없이 하는데, 참 이쁘다. 재능인가? 언젠가 아들은 내 구슬을 마구 써가며 목걸이를 만든 적이 있다. 플라스틱 구슬과 크리스털 구슬을 차별 없이 원하는 데로 섞어 만든 아들의 목걸이는 마무리를 내가 도와주긴 했지만, 어린아이가 만들었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예뻤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인가? 아님 어린아이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건가? 그나저나 사진찍으려고 찾으니까 왜 안 보이지?
내가 만약 목걸이를 만들었다면 일단 플라스틱 구슬과 크리스털 구슬을 차별해서 썼을 것이다. 게다가 주로 푸른 계열의 구슬을 쓰거나 붉은 계열의 구슬을 쓰는 등 같은 계열의 색 구슬만을 사용했을 것이다. 아들은 나와 달리 어떻게 해야 한다는 공식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틀을 벗어나 그 순간 예쁠 것 같은 조합을 만들어서 그런지 신선하게 멋진 목걸이를 만들었다. 이것이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창의력이 아닐까? 내가 어떻게 하면 아들의 창의력을 망치지 않고 잘 키워줄 수 있을까 나의 부족함으로 인한 고민이 커진다.
어머니 날이 일요일이라 어린이집에서는 미리 금요일에 아이와 함께 아침을 먹는 것으로 어머니 날 행사를 대신한다. 딸의 손을 잡고 간 어린이집에는 아침으로 하트 모양의 빵, 햄, 치즈, 토마토, 오이, 주스,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주스와 함께 딸은 빵에 햄만 얹은 샌드위치를 나는 있는 재료를 다 얹은 샌드위치를 챙겨 아이가 평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방에 있는 키가 작은 탁자와 의자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는 와중 딸 친구 하나는 무언가 거슬렸는지 탁자 밑에 들어가 울며 칭얼댔다. 선생님도 아이의 엄마도 다른 친구들과 친구들의 엄마들도 다들 탁자 밑의 아이에게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탁자 밑에서 충분히 칭얼댄 아이는 엄마를 향해 탁자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아이의 엄마는 엄마품으로 오고 싶은지를 물었고 아이가 수긍하자 아이를 탁자 밖으로 빼서 안아주었다. 조금은 소란스러웠지만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그 순간 나는 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울던 아이의 목소리가 작아서 귀에 거슬리지 않아 저 집은 좋겠다. 내 딸은 목소리가 우렁차서 울면 정말 피곤한데...
그렇게 아침을 먹은 뒤 엄마를 위해 준비된 발표자료가 있는 방으로 모두가 이동을 했다. 딸이 다니는 데이케어에는 컴퓨터를 상당히 잘 다루는 선생님이 계셔서 그런지 종이 카드가 프레젠테이션으로 대체되었다. 아이들이 엄마 흉내를 내며 엄마와 노는 것이 즐겁다는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표현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엄마가 바빠서 미쳐 오지 못한 아이는 아빠가 대신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아이의 아빠는 프레젠테이션을 동영상 촬영하면서 쓰인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나중에 아이 엄마에게 보여줄 모양이다. 덕분에 핀란드어를 잘 못하는 내가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읽는 거보다 남이 읽어주는 게 더 이해가 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