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의 도시 (2)
#028. 제물의 도시 (2)
시체를 발견했다는 준의 말에 지나치게 태연한 경찰관의 태도를 보며 준은 어리둥절해했다. 경찰관은 준에게 깨끗한 물 한 잔을 대접하며 그를 여행객들이 묵는 숙소까지 안내했다.
“저기 시체가….”
태연하다 못해 무심한 경찰의 태도에 준은 왠지 주눅이 들었고, 다시 말을 꺼내려 해도 싱글싱글 웃는 그들의 태도에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아까 사건을 접수한 경찰처럼 그를 여행자용 모텔까지 데려다주는 경찰 역시 놀란 어린아이를 어르듯 준에게 말을 했다. 준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시체를 발견했을 때보다 심장이 더 쿵쾅쿵쾅 뛰는 것 같았다.
만약 중요한 사건이라면 자신이 목격자가 될 테니 증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도시에 머물러야 하는 기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라. 다음 행선지까지 가는데 차질이 걸릴 거야.
준은 자신이 쓸데없는 짓을 했는가 싶었지만, 만약 그 상황에서 시체를 모른 척 지나갔다 해도 가슴에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어쩌면 남들 보라는 듯 널브러진 시체였기에 목격자가 자신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알아서 연락을 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했다고 생각을 하며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시체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도 너무 태연하게 구는 그들의 태도가 이상했다.
하지만 여기 경찰들은 너무 평화로운 곳에 살아서 긴장감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준은 복잡한 생각을 나름 정리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잠에 빠졌다.
- 난 할 만큼 했어. 그러니까 이제 신경을 꺼도 괜찮겠지?
어차피 시체를 목격한 것 외엔 준이 한 것은 없으니까. 생각보다 큰 도움은 못 되니 이쯤에서 빠져도 괜찮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준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뒤숭숭한 기분으로 잠에 빠졌기에 그날 준은 잠을 설쳤고, 다음 날은 찌뿌드드한 몸으로 아침에 일어나야만 했다.
그렇게 미묘하기 짝이 없는 도시의 하루가 지나갔다. 이윽고 준은 본격적으로 도시를 구경하러 나섰다. 식사도 대충 끝내며 빨리 모텔에서 나온 준은 어제 시체를 목격한 일을 잊으려는 듯, 도시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지인들의 이야기대로 이 도시는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준이 머문 여행자용 모텔은 도시의 외곽, 겉으로 보았을 때는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계층이 사는 곳에 위치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주변 건물이나 도로에는 쓰레기가 많이 보이지 않았는데, 보통 쪼들리게 사는 지역이라면 거리의 외관에서부터 그 상태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준은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준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떠올리며 도시와 비교했다.
준이 태어난 고향은 이 도시만큼 치안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도시 변두리였다고 할 수 있었다.
준의 고향 사람들의 성격이 난폭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분란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따지고보면 그 분란은 대개 찌드는 삶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어떤 도시나 나라를 막론하고 보통 이렇게 가난한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찌든 표정을 한 채 사소한 마찰로 인해 언성을 높여 이웃 보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이다. 준은 고향에서도,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도 그런 모습을 한두 번은 목격한 게 아니었다.
거기보다 더 가난하고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보통 그런 지역은 굳이 더 말할 것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준은 희한하게도 이 도시의 변두리 마을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종종 준은 지나가면서 마을 거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또 지나가는 주민들의 모습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다지 부유한 거리는 아니었건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스트레스보단 모든 것을 달관한 것 같은 은은한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준을 놀라게 했다.
진정 평화롭고 질서 정연한 도시라더니 가난한 사람들도 외부적인 피해를 덜 보는 걸까?
아니면 치안이 좋은 만큼 복지도 잘 되어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 괜찮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준은 그렇게 추측하기도 했다.
또 특이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준은 여기 변두리 사람들이 입는 옷을 살펴보았다. 여기 지역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무채색에 염색이 덜 된 것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준이 그다지 특별한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건만 도리어 그가 가장 눈에 띄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준은 가끔 그 지역 주민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걸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곧 준의 옷차림과 등에 진 배낭을 살피더니 곧 그가 도시 사람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여행자라는 것을 납득하면서 떠나는 표정을 했다.
특이하게도 그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르지 않았다. 호기심이 생겼는지 힐끔힐끔 계속 준을 쳐다보는 인간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대놓고 그를 해코지하려는 인간은 없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그 지역 사람들은 준에게 무관심하다는 느낌이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도시 외곽을 돌아다니면서 준이 강도나 소매치기 같은 존재들을 목격하고 맞닥뜨린 적도 없다는 점이다.
대개 치안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간다면 대놓고 돈이나 소지품을 요구하는 강도를 만날 확률은 낮아진다. 그렇지만 소소하게 사람의 돈이나 물건을 훔쳐 가는 도둑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었다.
종종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암만 여행을 오래 한 사람이라도 정신을 파는 상황이 생기는 수도 있었다. 준이 세심한 성격이라고 한들 어떤 경우엔 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기다 지금 준은 옷차림 때문에 본의 아니게 눈에 띄는 상황이었다. 만만해 보이는 외관 탓에 준은 타깃이 되기도 쉬웠건만 이상하게도 강도나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은 것은 특이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인들 말대로 이 도시는 꿈에 있을 법한 평화로운 곳일지 모른다. 준은 그렇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동안 거리를 구경하던 준은 서서히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디 식사할 만한 적당한 식당은 없는가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준은 자신의 뒤에서 경적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어제 자신을 모텔까지 안내해 준 경찰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먼저 준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고 준도 얼떨결에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경찰들은 도시에 막 도착한 준이 걱정되었는지 그를 발견하자마자 안전한 곳까지 안내해주기로 했다.
도시의 경찰들을 자기 가이드처럼 부리는 꼴이 되는 게 민망하여 준이 거절했지만 ‘어차피 큰 사건도 없으니 괜찮다’라고 말을 하며 그와 함께 대동하게 되었다. 준은 하루 동안 도시를 구경하면서 느낀 감상을 솔직하게 경찰들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여기는 참 신기해요. 부자들이 사는 동네도 아닌데 사람들이 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요.”
“…….”
경찰들은 준의 말에 대꾸는 안 한 채 마을 사람들처럼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준은 그들의 침묵을 대화를 이어나가도 좋다는 긍정으로 여겨 이야기를 더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희한한 게 있어요. 여기 사람들은 입는 옷 색깔이 다 비슷비슷하던데 혹시 여기엔 저런 옷들이 유행인가요? 여기선 색이 들어간 옷을 많이 보진 못한 것 같아요.”
“하하하….”
경찰들이 그제야 준의 말에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준이 어리둥절하는 모습을 보이자 둘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