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야사 09]정규직 아닌 정규직, 상담원

사원이야기

by 일알

채용공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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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맡은 업체는 은행이었고, 주로 상담원을 채용하고 관리했다.

상담원은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이렇게 두 종류로 구분되었다.

인바운드 상담원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대표번호로 전화를 하면 ARS를 거쳐서 랜덤으로 상담원들에게 배정이 된다.

상담원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점심시간 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 내내 전화를 받았다.

헤드셋을 끼고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매일 같이 몇 십, 몇 백의 사람을 만난다.

그들을 ‘감정노동자’라고 했다.

단순 문의로 전화를 거는 고객들도 많지만, 높은 비율로 불만을 가진 고객들이 전화를 한다.

그리고 그 불만 섞이고 때때로 화가 가득한 고객을 상냥하고 친절하게 응대를 하는 것이 바로 ‘감정노동자’인 상담원이다.

불만에서 나온 나쁜 감정이 헤드셋을 통해 상담원의 귀를 타고 들어와 온 몸을 거치면 맑고 고운 목소리와 함께 좋은 감정으로 변한다.

마치 공기청정기와 같이 고객님의 감정을 순화시켰다.

나쁜 감정은 필터에 걸러진 먼지처럼 찌꺼기가 남는다.

울분과 억울함이 몸 속에 켜켜히 쌓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쌓인 찌꺼기로 필터가 새까맣게 되어도 교체할 필터는 없다.

버티거나, 퇴사를 하거나.

내가 본 감정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아웃바운드 상담원의 매일매일이 프러포즈와 같았다.

일단 걸려오는 전화는 없다.

대신에 나눠 받은 DB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마치 어제 만난 사람인양 친근하게 대하며 상품을 팔았다.

수 십 번의 거절과 반복되는 멘트 끝에 성과가 있다.

그리고 그 실적은 모니터와 전광판에 일일 단위로 상영된다.

게시된 성적표는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으로, 누군가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1등은 달성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라는 걸.

자부심에도 부담은 함께했다.

오늘의 좋은 성과도 내일이면 사라질 눈이었다.

어렵게 한 달의 성적을 내면, 그다음 한 단을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이렇게 매일을 긴장한 상태로 버티면 좋은 성과와 좋은 보상을 얻지만

그 긴장은 언젠가 끊어지고 말 것.

결국엔 실적에 따라 철새처럼 떠나가야 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맡은 은행은 업계 최상위였다.

많은 사람들이 은행을 찾아 돈을 맡겼고, 또 빌렸다.

빌렸던 사람들이 돈을 더 빌렸다.

돈을 많이 빌리면 상담원들의 급여가 올랐다.

그럼 거기에 비례하여 받게 되는 수수료도 높아졌다.

그 수수료는 곧 나의 실적.

가만히 있어도 실적이 늘어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장사가 잘되어 상담원들의 월급이 잘 나오니 서로 들어오고 싶어 했다.

채용공고만 보더라도 확실히 다른 업체들보다는 급여가 쎘다.

그러다 보니 난 공고만 올려도 지원자가 들어왔다.

다른 선배들은 지원자가 없어 이력서를 보고 직접 아웃바운드를 하는데,

난 지원한 사람들을 잘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신입에게 주어진 특권이었는지, 아니면 얻어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운이 좋았다.


정규직이라 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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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이라 함은 ‘고용의 정함이 없는 자’를 말한다.

쉽게 말해 근로계약서에 끝나는 기간이 있으면 정규직이 아니다.

회사나 직원 둘 중 하나가 그만하자고 하기 전까지는 끝나는 날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정규직이다.

그런데 콜센터는 좀 아리송하게 되어있다.

분명 계약서에는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업체끼리의 계약은 분명 기간이 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업체담당자에게 밉보여서 업체끼리의 계약이 만료가 되면 상담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다른 업체의 상담원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기존에 일하던 상담원들을 고용승계를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결과적으로는 자의가 아닌 상황으로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니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살펴 ‘비정규직 보호법’에 ‘도급직’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를 하도록 정하기도록 했으니, 정규직이라고 말하긴 참 민망한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선배들은 열심히 ‘정규직’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렇게 알려줬다.

우리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뽑는 상담원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고된 일에 비해 처우는 열악하여 일을 해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취직이 어려워 성형도 하는 시대에도 일을 해보지 않겠냐며 하루 종일 전화를 돌리는 상황을.

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을 정규직이라고 말하면서, 거짓말이 아닌 거짓말을 매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 코가 계속 길어지던 무렵, 벌어지지 말하야 할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정리해고’

전 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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