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발생 시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가족오락관이라는 TV 예능 프로가 있었습니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25년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장수 프로그램입니다. 허참 씨를 국민 MC로 등극시킨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지금 4,50대는 모를 수가 없고 알면 연식이 들통나는 프로그램입니다.
가족오락관은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이 등장해 다양한 게임을 진행했었습니다. 여러 게임 중엔 외부 소리가 들리지 않는 헤드셋을 쓰고 팀을 이뤄 제시된 단어를 일렬로 선 팀원들에게 각자 전달해서 마지막 주자가 그 단어를 맞추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크게 이야기해도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상대의 입모양을 보면서 예측해 정확하게 맞추기도 하지만 전혀 엉뚱한 단어가 나올 때가 많아 그 과정과 결과가 시청자의 웃음을 유발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 게임입니다. 사람들 사이 말이 계속 전달되면서 전혀 다른 말로 전달되는 현상들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 중 본인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본인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만 말하면서 중간중간 과장이 포함되고 일부가 누락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현상은 기업 내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직적 문화가 강한 기업일수록 그리고 대기업일수록 내부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런 경향이 많이 나타납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경영회의에서 회장님이 이런 한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해 봅니다. "비즈니스는 속도가 중요한데 언제부턴가 스피드가 느려졌어요. 혁신의 속도를 높여주시기 바랍니다" 회장님의 이 말씀을 갑자기 듣게 된 계열사 사장님들은 모호성 때문에 일부는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일부는 회장님의 커뮤니케이션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맥락과 다양한 정보를 취합하기도 합니다.
보통 이럴 때 내부 커뮤니케이션 라인에 어떤 상황이 발생하냐면 외부에서 회장님의 복심이라 평가받는 분이 등장해서 회장님의 커뮤니케이션을 재해석하기 시작합니다. "부회장 OOO입니다. 오늘 경영회의 회장님의 말씀은 한 달 전 우리 OO 건설의 베트남 현장 상황을 보고받으시고 느끼신 말씀입니다. 신공법을 적용하는데 상당히 비효율이 많았고 올 초에 계열사별로 보고하셨던 혁신 제도를 현장에 적용하면서 비효율이 다른 계열사에도 있는 것이 아닌지 재점검하라는 지시사항이 있었습니다. 내일 경영기획실에서 계열사별로 효율성 점검에 대한 재점검 요청과 결과 보고 일정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물론 VIP의 커뮤니케이션이 아주 세밀하거나 디테일할 필요는 없습니다. 추상적인 큰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슈에 따라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정확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위기 상황 시 선문답 같은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면 의사 결정이 지체되고 VIP가 침묵하고 있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결국 일선 말단은 움직이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더 큰 문제는 회장님의 말씀을 재해석해 주시는 분들이 다른 목적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오히려 이분들이 위기관리의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상존하는 내부 커뮤니케이션과 의사 결정 문제입니다. VIP가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으니 이것을 재해석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더 커집니다. 커뮤니케이션 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VIP 커뮤니케이션을 신뢰하지 않고 VIP의 커뮤니케이션을 해석해 주는 라인과 비선라인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서 진의를 파악하려 노력하게 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위기가 발생하면 빠른 대응과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합니다. 빠른 커뮤니케이션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빠르다는 시간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고 모두 상대적입니다. 1시간이 빠를 수도 있고 3일 뒤 해당 위기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을 했는데 그게 빠를 수도 있습니다. 위기 발생 시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성공적 위기관리를 위해선 상황 보고가 정확해야 하고 그 상황이 정확하게 의사 결정권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최선의 방안을 결정해서 다시 아래로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줘야 합니다. 정확한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지 않으니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상 병목이 발생하고 실제 커뮤니케이션 실행까지 과도한 시간이 소모되면서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늦게 커뮤니케이션하게 됩니다.
우리 기업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가족오락관과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면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좀 더 추구해 보시길 권유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