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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거리가 훌륭한 소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조직의 최고 리더는 오히려 평소에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플렉서블(flexible) 오피스'가 한때 유행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고정된 자리가 아닌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근무한다는 변화를 표방하고 CEO 및 경영진들이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한다는 명분을 자랑하면서 말이죠. 일부에선 플렉서블 오피스라는 이름하에 전체 직원보다 적은 수의 자리를 만들어 내근직 외 영업직은 외부 영업활동에 집중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전망이 좋거나 위치가 좋은 자리는 경쟁이 치열하기도 했지만 환경이 문화를 만든다고 했듯이 고정적인 자리가 아니어서 수직적인 문화에서 수평적인 문화로 빠르게 변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시스템에는 장단점이 있을 겁니다. 장점으로 생각했던 것도 막상 해보면 예측 못했던 단점이 되기도 하고 단정으로 생각했던 것도 막상 현실이 되면 의외로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회사가 만들어진 최초부터 플렉서블 오피스 환경이었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고정된 환경에서 갑자기 자유로운 환경으로 바뀌니 어느 정도의 혼란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CEO와 주요 임원들의 자리 문제였습니다.


과거 환경에서는 개인 룸에서 업무를 보셨던 CEO가, 주요 임원분들이 갑자기 나의 옆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합니다. 구성원들과 소통을 위해서 물리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거리를 좁혔다고 하지만 심리적 부담감의 거리만 좁아지고 하루 종일 업무 보기가 불편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CEO 옆자리에 당첨된 구성원은 오늘의 재수 없는(?) 구성원으로 낙인이 찍히고 우려와 격려가 쏟아집니다.


CEO의 입장에서는 이름도 몰랐던 한참 거리가 있던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어 자신이 구성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멋있는 리더처럼 보였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소통은 잠시고 업무 때문에 만나야 할 내부 사람들과 외부 인사들과 미팅은 이어지는데 CEO 공간을 없애버렸으니 공동 회의실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공동 회의실 중 하나는 CEO 전용 회의실로 바뀝니다. 우왕좌왕하는 CEO가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회의실 하나가 CEO 방처럼 고착화됩니다. 그냥 CEO 공간을 다시 만드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 CEO 공간은 다시 생깁니다.


소통은 물리적인 거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하는 것만이 훌륭한 소통이 아닙니다. 그룹 커뮤니케이션, 퍼블릭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해서 꼭 대중 속에 들어가야 하고 광장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만 막상 현실에는 불가능한 상황들에 직면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물리적 거리와 화학적 융합이 함께 작동해야 최고 리더의 성공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직들이 소통을 위해 물리적인 변화에 집중하는 것은 일관성있게 긴 시간이 필요한 화학적 융합보다 뭔가 빠르게 변화했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최고 리더는 오히려 평소에 일반 구성원들과는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거나 격리(?) 된 상황에서 구분되어 일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경우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조직 리더는 상대해야 하는 이해관계자가 다르고 일의 범위와 특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최고 리더가 정말 열린 소통을 원한다면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보다 투명성을 좀 더 강화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다양한 툴과 연관된 사람들을 통해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리스닝하고 본인의 생각과 본인의 방향성 그리고 소통뿐만 아니라 실천의 과정을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소통을 확대시키는 보통의 시발점입니다.


지금 "국민 속으로 들어가 늘 소통하겠다"라는 명분으로 지금의 청와대가 아닌 다른 장소에 대통령 집무실을 만들겠다는 일종의 '물리적 거리 좁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꼭 대통령 집무실 장소를 바꾸겠다면 장시간 계획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대통령 주변 환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논란이 전략적이라면 무엇인가 다른 목적이 내포된 일종의 '시선 돌리기'거나 비전략적이었다면 실기에서 비롯된 실패한 아젠다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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