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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언제까지 소통만 할 겁니까?

내가 결정해야 할 몫까지 소통에 의지하는 것은 소통만능주의의 폐해 

조직 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부분조차 '소통'에 집착하는(집착 당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른바 '소통 만능주의'


"바보야 문제는 소통이야"

"고객과의 적극적 소통 행보 보이는 OOO 회장의 새로운 리더십"

"기업 CEO는 MZ 세대들과 적극적 사내 소통으로 기업 내 문제 해결해야"

"이제는 국민 소통만이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해법"


언제부터인가 소통이 만병에 근원같이 평가되고 있지만 사실 모든 문제는 복합적이고 선후관계가 있으며 단 하나의 요인이 주범도 아니도 단 하나의 해법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통은 문제 해결에 표면적인 부분이나 윤활유, 촉매제 역할을 담당하고 문제 해결의 코어는 아닌 경우들도 많습니다. 결국 소통 만능주의가 해당 이슈와 문제를 더 혼란에 빠뜨리게 되는 결과도 비일비재합니다.


제가 한참 스피닝에 빠졌던 시절, 피트니스센터에는 훌륭한 전문성을 보유하신 두 분의 스피닝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두 분의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한 분은 사소한 부분까지 항상 회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음악과 난이도를 결정하셨고 한 분은 많은 부분을 주도적으로 결정해서 과정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회원들의 평가도 달랐습니다.
초반에는 항상 소통하는 선생님 평가가 월등히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통의 양은 증가했고 온전히 스피닝에 집중하기 보다 소통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통하는 선생님에 호평하던 회원들도 한 주 두 주가 지난 후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이 난무하는 지루한 과정에 오히려 불만이 하나 둘 늘어났고 그 불만은 소통을 강조했던 선생님을 향하더니 결국 선생님이 교체되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소통을 하든 다른 뭔가를 하든 이슈와 문제 해결을 위한 행위를 실행하기 위한 '결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의사 결정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하는 나 자신이 그 이슈와 문제에 대해 일정 부분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슈와 문제에 대해 나도 정리가 안된 상태가 되면 결국 소통이나 경청이란 이름으로 다른 사람, 다른 의견만을 듣고 판단하고 재단하게 되며 그것은 소통이란 이름으로 오히려 분란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일부는 그것을 의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확한 결정을 한다고 평가받는 훌륭한 의사 결정권자들은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는 본인의 결정에 대한 비난 또한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이런 사람들이 보통 멘탈이 강합니다.


결정이 필요한 순간임에도 정확한 결정을 하지 않는 의사 결정권자들은 큰 트러블이 없는 사람으로 평판을 관리하지만 오히려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정확한 결정'을 하고 있는 의사 결정권자는 정말 괴로운 고민의 시간을 이겨내고 이후에 반대 의견들을 극복하는 리더이며 이런 분들이 기업과 조직의 위기관리를 전략적으로 리드하는 전형적인 분들입니다. 


소통이 불필요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해야 할 몫까지 무조건 소통에 의지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이해 그리고 상황 이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소통만능주의의 폐해입니다. 


위기관리는 종국에 의사 결정권자의 몫이며 따라서 의사 결정권자는 그 자리가 만드는,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은 내가 결정 해야하고 해내야 합니다. 그 감당이 안 되면 의미 없는 소통만 주장하지 말고 그 결정을 하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기업과 조직을 위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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