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지향적 관점이 중요하다
오래전 이 땅의 운동은 '헬스장'으로 표현되는 보디빌딩이라고 하는 운동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몸짱 열풍이 불면서 동네 이곳저곳에 헬스장이 속속 들어섰고 수많은 방송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송출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여성전용 헬스장, PT전용 헬스장까지 등장했으니까요.
그때 해외에서는 크로스핏(Crossfit)이라고 하는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했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기존의 보디빌딩 방식이 육체를 가꾸는 법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 크로스핏이라고 하는 방법은 실질적인 운동수행능력에 초점을 두고 신체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방향으로 합니다. 멋진 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몸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 운동. 크로스핏은 국내에 상륙하자마자 센세이션한 이슈를 일으키게 됩니다. 일단 스포츠 방식으로 진행하는 재미가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 그러했고,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운영했기에 멋진 애슬릿 룩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그랬던 크로스핏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스포츠 클라이밍과 실내테니스장, 이종격투기 도장 등 대체할 수 있는 운동들이 늘어났고 크로스핏 자체가 너무 빡센 방식으로 운영되다보니 소수의 매니아들만이 하는 운동이 되어버려 사업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캐틀벨부터 시작해서 맨몸운동과 관련된 원서를 통해 운동방법을 공부하며 크로스핏의 초창기에 활동하다가 스포츠 클라이밍 등으로 넘어갔고 이때 웨이트 트레이닝과 안녕을 고했으니까요. 실내형 체육산업의 전망은 밝지만 그 안에 옛날옛적 운동시설의 자리는 없을듯 합니다.
그런데 저는 페이스북을 하면서 신기한 그룹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운동을 운동답게 접근하지 않고 놀자고 접근하는 수상한 놈'정도 되겠습니다. 운동의 맥락을 바꾸고 있는 슬릭 프로젝트의 주요 요소들을 하나씩 하나씩 뜯어서 해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남선녀들이 모여 신나게 운동하는 그곳
슬릭프로젝트의 콘텐츠를 처음 접하게 되면 뭐야 이건?!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같이 운동을 하는것 같기는 한데 그 내면에는 뭔가 다른 개념들이 들어있으니까요. 좋게 표현하자면 운동을 보다 재미있게 하는 방식이고, 젊은 남녀들이 자연스럽게 만날수 있는 명분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도 조금 엿보입니다. 슬릭프로젝트는 이 둘 사이에서 교묘한 간극을 취함으로서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슬릭프로젝트가 보여주는 운동의 모습은 기존 운동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깔끔하게 운동복을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활짝 웃으며 하하호호하는 느낌이랄까요. 잘생기고 예쁜 인물들도 중요한 요소겠지만 저는 환하게 웃는 미소가 가장 눈에 들어왔습니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운동하지마. 우리와 함께하면 신나고 즐겁게 할 수 있어. 재미있게 운동하고 사람도 사귀는 커뮤니티. 함께 하지 않을래? 라고 얘기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사실 슬릭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운동방식은 아주 새로운 무엇은 아닙니다. 크로스핏을 원안으로 하는 고난이도 기능성 웨이트트레이닝을 남녀가 같이 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좀 더 라이트하게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여주는 맥락은 전혀 다릅니다.
WOD 같은 단어. 운동의 개념. 기능적 효과. 이런것들을 다 빼버리고 보여주는 것에 집중합니다. 기존 크로스핏이 사업적으로 실패한 이유는 자꾸만 이런 것들을 강조해서 심각하게 매니악한 분위기로 만들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운동을 경쟁적 분위기로 몰아서 전문선수들이나 할법한 운동으로 만들어 결국 신규회원들의 진입장벽을 막아버린 것이죠. 슬릭 프로젝트의 서비스 어떤 곳에도 크로스핏이나 칼리스테닉스 같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크로스핏을 상징하는 역도훈련과 괴랄한 철봉운동을 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냥 신나게 운동하자는 이야기만 있을뿐.
꿈과 희망이 가득한 슬릭 프로젝트는 정확하게 대중이 바라는 운동의 모습을 고객에게 제시합니다.
일단 초기에는 멋진 외형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소통이 없이 100% 목적성만으로 움직이는 프로젝트라면 아무래도 편한 마음으로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독서, 운동 등 대부분의 여가활동에 비용을 지불하는 타겟고객은 직장인이 대부분일것이니까요. 집-회사-집-회사를 오가는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경험을 제안한다는 것.
그래서 모든 길은 커뮤니티로 이어집니다.
독서모임이든, 미술관 관람이든, 댄스동호회나 스크린 골프모임이라 해도 이 패턴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정적인 인간관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묶어줄 수 있는 명분만 제시하고 유형화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외형을 삽입하여 이미지와 영상형태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니까요.
한때 소셜데이팅이라고 하는 서비스가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IT앱서비스로 창업에 도전했었는데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성장을 올렸던 분야는 1)게임, 2)커머스, 3)소셜데이팅을 제외하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앱을 통해서 사람을 만난다고 하는 방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타이밍인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분명한 목적을 갖고 이루어지는 만남을 더 선호할 수도 있지만 어떤 목적성 있는 활동을 함께하면서 사람을 사귀고 알아갈 수 있는 방식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을까 합니다.
콘텐츠 창업의 선도사례를 보여준다
슬릭프로젝트와 같은 사업이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기존 실내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는 단순한 헬스장, 요가클럽 등으로도 운영이 가능했던 시기였지만 이제는 법인형태로 전문적인 스포츠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곳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미 기존 서비스는 대부분 경험할만큼 다 경험해보았고 고객들의 니즈는 새로운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역세권에서 대규모 형태로 시설과 규모를 갖춘 짐을 열기만 하면 돈이 우르르 들어오는 구조였을 것입니다. 그냥 대충 해외에서 헬스기구 사와서 인테리어 적당히 하고 직원 몇명 두면 운영할 수 있는 방식.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전문적인 조직역량을 갖고 딥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고 강한 소규모 샵들이 널려있고, 실내클라이밍에서부터 스크린골프, 야구, 테니스 등 다양한 서비스가 포진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등장으로 혼자서 운동할 수 있는 정보가 주어지게되면서 홈짐문화도 번성하고 있습니다. HMR이 외식업체를 위협하는 것처럼 개인이 스스로 운동하는 문화가 커져가면서 산업전체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중입니다. 운동을 하고자 하는 예비고객이 헬스장에 와서 상담을 받고 등록해서 고객이 되는 것이 거의 일반화된 프로세스였던 시절과 다르게 온라인(유튜브)에서 운동방법을 검색하고 구독하고 스스로 공부하면서 최적의 대단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접근방식이 달라진 시대에는 대충 때려박은 두루뭉실한 서비스로는 고객의 선택을 받지 어려울테니까요.
이런 시대에 과거의 불필요한 덩치를 가진 조직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화된 시설들은 낮에는 아주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이용하고 오후부터는 학생들이, 저녁에는 직장인들이 방문하는 순환구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게다가 단순이용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그룹클래스를 수강하거나 개인PT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구조자체가 기능하지 않게 된 세상. 슬릭프로젝트는 어려움에 처한 기존사업자에게 어느정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강점을 가진 서비스인 것이죠. TLX나 클래스픽이 기존의 파편화된 데이터를 앱서비스로 모아 새로운 유통경로를 제안하여 트래픽을 모으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슬릭프로젝트는 문제인식은 동일하지만 접근방식에서 기술적 접근을 배제하고 콘텐츠 파워와 서비스모델로 승부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현재까지는 TLX와 클래스픽과 같은 기술기반의 문제해결방식이 조금 더 앞서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많은 가맹점을 확보했고 앱서비스가 있으며 실질적인 매출액수를 돌리고 있으며 수십억단위의 투자를 유치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콘텐츠 파워를 가진 이들이었다면 결과는 다르게 나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콘텐츠 단위의 접근이라고 하면 애초에 이것을 리드하는 상징적인 롤모델이 있어서 하드캐리하는 구조여야 하는데 강력한 마스코트가 이끄는 구조가 아니라 온라인에 약간의 강점을 가진 팀이 리드하는 조직역량을 갖고 있는 이유로 슬릭프로젝트가 나름대로 잘하고는 있지만 경쟁사대비 충분한 퍼포먼스를 내기 어려운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만약 해외의 포트리스나 매드바즈, 바스타즈, 브랜드카터 같은 이들이 리드했다면 어떠했을까요. 국내에는 재미어트라고 하는 채널이 있는데 이들이 이런 사업을 해본다면 뭔가 다른 결과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슬릭프로젝트는 창업을 하기 위해 기술기반의 문제해결구조만이 유일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이드와 같은 사례. 콘텐츠 중심의 문제해결구조로도 얼마든지 유의미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고 창업에 도전할 수 있다. 과거 피키캐스트는 페이스북에서 시작했고 최근 마이너한 재능공유시장을 연 탈잉도 페이스북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