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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수 Jul 06. 2024

8강

여러분의 일상에 예루살렘을 마련하셨습니까?


여러분은 남모르게 자신의 곡갱이로 수직갱도를 파고 있습니까? 다윗처럼, 나의 삶에 난공불락의 요새 예루살렘을 마련하였습니까? 예루살렘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찌놀' 수직갱로를 자신의 곡갱이와 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갱도를 마련하시는 글쓰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배철현 교수님 수업중 과제 질문-


'나는 어디를 보고 있는가? 나는 내면에서 분출을 기다리고 있는 '최선'을 발굴하고 있는가? 그 샘물을 향해 깊이 파내려갈 도구를 가지고 있는가? 배철현, <승화>, 21세기 북스.


인생의 수직갱도를 나는 파고 있는 걸까요? 


먼저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게으른 몸과 마음을 고백해 봅니다. 운동도 조금 하고 글쓰기도 찔끔찔금, 뭐든 힘들지 않을 만큼만 하는 편히 안주하고자 하는 나를 이기는 습관이 언제나 필요한 것 같아요. 어쩌면 그 습관을 기르는 일이 곡갱이로 수직갱도를 파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한때는 남과 비교하며 힘든 나의 인생을 원망하며 스스로 우울에 빠져 살기도 했습니다. 행복만을 줄 것 같아 선택했던 결혼은 나에게 커다란 십자가 두 개를 얹어줄 뿐이었어요. 두 아들입니다. 아버지라는 십자가는 더욱 무거웠어요. 남들은 친정엄마가 아이를 잘 돌봐주어 경단녀가 되지 않고 승진도 쭉쭉하는데, 심지어 나는 간병휴직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즐기며 지내와도 될 지난날들을 나는 이 악물고 오만상을 쓰고 억지로 억지로 도살장 가듯 끌려가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운명을 받아들인 바로 그 순간부터, 보이지 않던 예루살렘이 보이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내가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그때 취미로 하던 그림도 손 놓은 지가 10년이 넘었고 나는 노트북 하나면 충분했던 글쓰기가 내가 쉽게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였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자 희망이라는 예루살렘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희망의 불빛은 내 안에 있었습니다. 


금세 일상의 무게와 일상의 속도에 휘감겨 글쓰기도 시늉만 했을지도 모르는데, 감사하게도 코로나 19는 나에게 많은 적막한 시간을 선물했습니다. '온라인 교사성장학교'라는 고래학교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어요. 그곳에는 일상의 혁신을 실천하는 선생님들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새벽기상하고 그 시간 글을 함께 써서 올렸어요. 마침 김미경 학장님의 미라클 모닝은 만 명이 넘는 회원들로 뜨거웠습니다.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나도 새벽기상하고 글 쓰는 습관을 꾸준히 만들어 갔어요. 그것이 나의 수직갱도 파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게으르고 끌려다니던 삶을 혁신했고 시간을 경영하는 삶으로 습관을 바꾸었던 것 같아요. 새벽 두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자 남은 시간은 해야 할 일들로 끌려 다녀도 행복했습니다. 전처럼 우울한 저녁과 우울한 아침을 더 이상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어요. 여전히 많은 해야 할 일들로 숨이 막혔지만 그 무게가 '진실로' 가벼워졌어요. 덜 힘들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김미경 학장님이 새벽 5시 미라클모닝 유튜브에서 배철현 교수님의 위대한 개인 시리즈 4권을 소개해 주는 그 진심과 경의를 캐치했고 나는 바로 교수님의 책 중 가장 마음에 닿았던 '정적'이라는 책을 샀습니다. 담백하고 간결하며 강한 메시지는 힘들 때마다 용기와 명철을 회복시켜 주는 것 같았어요. 어쩌면 배철현 교수님을 알게 된 것이 나의 수직갱도 파기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무리 공짜로 유튜브로 매일묵상으로 용기와 지혜와 명철을 방출해 주시지만 그릇만큼만 담을 수 있었어요. 욥기부터는 어려워 다시 듣고 다시 듣지만 다 듣지 못했네요. 


'나만의 예루살렘을 마련하셨습니까?'


'나만의 예루살렘을 마련하셨습니까?'라는 과제 질문을 받고, 한참 헤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방황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꾸역꾸역 과제를 써서 제출하고는 싶어 쓰고 있어요. 


먼저는 예루살렘이라는 용어에 압도됩니다. 여름성경학교에서 혹은 간간히 다닌 교회에서 '범접하면 죄짓는 것 같은' 종교의 성스러움을 지나치게 배운 건지 '나만의 예루살렘'을 생각하자 어쩐지 죄짓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듭니다. 오직 살아계신 예수님만이 예루살렘을 가져야 죄짓지 않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껴요. 교회에서는 또 이 사회는 왜 두려움과 죄책감부터 가르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미 내 뇌에 새겨진 듯 그러한 자기 검열이 강력합니다. 한동안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의 뜻조차 파악하는데 혼란을 겪어요. 아직 제가 어린아이의 미성숙한 성서이해 수준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둘째, 스스로의 실천과 스스로의 의지에 대한 지나친 과소평가입니다. '나 같은 게 뭐라고' 늘 이런 생각에 내가 하는 글쓰기나, 내가 하는 기여와, 내가 하는 작은 노력들이 보잘것없이 생각되기 때문에 나만의 수직갱도와 나만의 예루살렘을 '언급'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은 이런 이유를 모르는 '겸손?' 이유를 모르는 자기 비하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외국인 친구들을 보면 항상 당당했고 자신의 선택에 충실했던 것 같아요. 어쨌거나 저도 이런저런 바쁜 삶을 살았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보잘것없음'을 먼저 느껴 버립니다. 내가 하는 일상에서 나의 수직갱도 파기를 찾는데 이러한 고정관념이 큰 방해물이 되었어요. 나 같은 게 뭐라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수직갱도'를 내 보잘것없는 삶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한동안 8강 과제 글쓰기를 하지 못했던 이유입니다.(오늘 아침까지도 고민했습니다.) 


나의 수직갱도 파기는 글쓰기이고 새벽기상이고 좋은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 고래학교 그리고 '자기 치유를 위한 글쓰기학교'임을 고백합니다. 


일상에서 구체적인 장소-예루살렘을 마련하라 


지난 2주 동안 새벽공부를 하기 전 먼저 새벽운동을 40분 정도 하기 시작했어요. 별건 없고 인근 안양천을 걷고 일부구간을 달리는 것입니다. 안양천을 걸으며 어느 곳이 나의 예루살렘인가? 어느 장소가 좋을까 두리번거렸더니 한 장소가 눈에 들어왔어요. 앞으로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안전한 다리가 그 위에 든든히 버티고 있는 곳입니다. 돗자리도 필요 없이 시에서 만들어 놓은 벤치는 너무 좋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잠시나마 이곳이 나의 '예루살렘'이다라고 중얼거려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 정한 바가 없지만, 일단 정하고 갑자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시지 못했는데 갑자기 나에게 최고의 든든한 기둥이 생긴 것만 같습니다. 실실 웃음도 나옵니다. 늘 흔들리는 나약한 삶이 용기 있는 삶으로 바뀌는 느낌입니다. 교수님의 과제 덕분에 커다란 용기 선물 받습니다. 언제나 과감하고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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