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수 Jul 12. 2024

9화

“당신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시인是認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실수합니다. 다윗도, 아무리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더라도, 비윤리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의 모습은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의 절대왕권을 가졌지만, 선지자 나단의 지적에 저는 야훼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잘못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자는, 난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 시인으로 밧세바를 통해 솔로몬이란 자식을 얻게 됩니다.


9강의 과제질문 '자신의 잘못을 바로 시인是認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나는 마치 나에게는 전혀 해당이 없는 질문으로 남의 일로 받아들여졌나 봐요.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특히 정치인들을 떠올렸어요. 혹은 작은 학교에서도 세력을 형성하고 좌지우지하려는 정치하는 사람들, 학급 내에서도 세를 만들고 정치를 하는 학생들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바로 시인是認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퍼뜩 '네' 혹은 '아니요'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그만큼 대단한 잘못을 저지를 직책에 있지 못해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한참을 뜸을 들였어요. 수직갱도를 파고 예루살렘을 지었습니까라는 질문 이상으로 뜸을 들이고 나에게 묻는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직업상 정직이라던가 진실을 말하는 용기에 대해 늘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보니 도리어 질문받는 입장이 어색했는지도 몰라요. 혹은 나는 늘 남보다 정직하고 잘못을 바로 시인하는 사람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돌아보니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강한 정직교육을 받았어요. 기억나는 사건이 있었는데, 조그마한 시골 동네 구판장에서 친구와 물건이나 돈을 훔친 적이 있었어요. 친구는 능숙한 솜씨로 무언가를 가져왔고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조수로 망을 보도록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를 좋아하고 순진했던 나는 시키는 대로 했는데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긴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간도 크게 주인의 돈주머니를 훔쳤고 그 자리에서 들키지는 않았지만 곧 들통이 났는지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시며 나를 족히 1km 되는 구판장까지 질질 끌고 가셨고  '잘못을 바로 시인是認'하도록 시키셨습니다. 


잘못을 바로 시인是認하는 일은 세상을 향해 부끄러운 나를 진실로 고백하고 공언하는 치명적인 순간이었던 거 같아요. 당시에 나는 어머니께 부끄럽다며 안 가겠다고 심하게 저항했어요. 나는 망을 본 것뿐 돈을 훔친 일도 돈을 나눠 받은 일도 없다고 억울해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나를 믿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죽기만큼 싫었죠. 그때만큼 혼 난 적도 없지만 그때만큼 저항한 적도 다신 없었을 거예요. 


그때의 망신 이후로 다시는 큰 잘못에 휩싸이는 일이 없도록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세상에는 갖은 유혹이 많지요. 화장실에 가면 누군가 두고 간 지갑도 흔하게 있고요, 동그라미 하나만 더 붙여도 금액이 달라지고요. 하물며 학교의 크고 작은 예산을 슬쩍 나를 위해 쓰고 싶은 생각에도 빠집니다. 구판장 사건으로 나는 '부끄러움'을 경험했고 '찝찝함'을 배웠기에 그런 일의 근처에 잘 서성이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찝찝했던' 친구의 제안부터 실은 나는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거든요. 그 작은 거절을 못했기에 친구가 큰 잘못을 저지를 때 나도 망을 보고 돕는 큰 실수에 휘말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잘못을 시인하는 것보다 잘못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 더 쉬웠어요. 동네 착한 아이로 소문이 나있던 내가 도둑질에 가담했던 것을 시인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면 혼난 것보다는 부끄러움을 당한 다는 게 정말 정신적으로 힘든 일은 맞나 보아요. 그리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청문회에 나와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하고 나서 얻은 바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가해 보면, 가장 크게는 부끄러울 일을 시작하지 않는 지혜였던 것 같아요. 애초에 얼씬거리지 않는 것입니다. 얼씬거리지 않아야 죄를 짓는 사람들과 끈끈해지지 않고, 그래야 내가 양심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람들과 많이 얽힌 일에 나만 잘못을 시인하기란 정말 어려울 듯해요. 내가 망하고 지탄받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어려운데, 진실을 토해내다 보면 나와 나의 동료 이웃 한 그물망째로 죄를 고백해야 할 일이 또 많습니다. 조직이란 게 그래서 또 어려운 거 같아요. 내부고발자의 문제는 정말 문제가 어마어마하고요. 내부고발자들 대부분이 따돌림에 백 프로 휩싸인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일이 나의 잘못을 시인함으로써 나의 동료들의 잘못이 백일하게 드러나는 것 아닐까 싶어요. 내 잘못을 시인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어쨋거나, 돌아보건데 어머니 손에 질질끌려 잘못을 시인하는 부끄러움과 망신을 감내해야 했던 그때 나의 양심이 또한번, 나의 용기가 또 한 번 성장했던 것 같아요. 다윗이 '잘못을 바로 시인是認'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용기있고 양심있는 지도자임에 틀림없는 것 같네요. 


언제나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이전 07화 8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