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라떼교사
너무 쉽게 잊는 나를 돌아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어요.' <마지막 수업>이어령. 314쪽.
어떤 성인군자도 자식 때문에 속 끓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까만 세단에서 내려 경호원의 호위를 받는 제벌집 상속녀도, 유명 연예인도 그 어떤 엄마도 자식 때문에 속 끓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서이초 이야기를 기억의 저편으로 떠나보내고 싶어도 결국 누군가의 입으로 다시 들을 운명입니다. 나는 뼛속까지 교사입니다.
내가 소속한 교사커뮤니티 고래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2024 혁신교육포워드 세션에 참석했습니다. 마지막 세션의 발제자는 강민정 의원이었습니다. '서이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악성민원으로만 치부하고 덮을 수는 없다. 서이초 사건은 대한민국 교육의 총체적 문제가 가장 극단적이고 비극적 형태로 발현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프지만, 교사로서 이러한 비극의 당사자이기에 아프고 미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아프지만 승민이를 잊을 수는 없습니다. 교원의 언저리에 이어지는 불행의 그림자는 언제 멈출까요? 현재 가장 취약한 곳은 어디일까요?
이제 그 누구도 공공연히 서이초 교사 언급하기를 꺼립니다. 모두가 고통스러운 아픈 과거이기 때문이며, 제 살을 호벼파는 고통을 느끼기 싫은 이기적 본능일 것입니다. 너무 많이 이야기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외쳤고, 결국 언론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고, 정치인이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검은 점을 이루어 함께 외쳤었죠.
나는 왜 더 이상 서이초 사건을 말하지 않을까요?
말해도 시원한 솔루션이 없고, 말할수록 내 심장을 찌르는 고통이 함께 옵니다. 고통을 직면하고 싶지 않은 자기애적 생존본능이 나를 휘감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하고 좋은 것만 보려 하는 이기적 욕망은 언제나 나의 눈을 감게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스스로 ktx 열차를 타고 자율적으로 2024 혁신교육 forward를 신청하신 수백 명의 선생님들은 모두 한결같이 서이초 사건을 아파하고 있으며 자신의 고통으로서 저마다의 생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차마 서이초 선생님 이야기를 입에 담지 못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교사 출신으로 이제 더 이상 교사가 아니신 강민정 의원만 유일하게 모인 교사들 사이에서 크게 외치며 서이초 사건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트리거를 해결해야 한다. feat 강민정 의원
트리거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교육의 문제도 결코 명쾌히 해결되지는 못합니다. 서이초 선생님을 결코 떠나보내지 못할 것입니다. 트리거는 바로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입니다. 바닥을 치고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교권회복은 바로 이 트리거의 해결로 비로소 회복의 물꼬를 틀 것입니다. 오래전 잘린 교사의 날개를 되찾아오는 것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교사의 입을 막고 언론의 입을 막으면 모든 것을 막은 것입니다. 아주 쉽게 정치가는 제멋대로의 폭주를 감행할 수도 있지요. 이 모든 왜곡의 근본 원인을 이미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는 못합니다. 아파서 말 못 하고, 미안하여 말 못 합니다. 온라인 교사모임은 이 교육의 문제를 담론으로 회자하여야 합니다. 응어리진 외침을 입안에서만 웅얼거리지 말고 크게 외쳐야 합니다. 어린 동료교사가 밝게 웃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희망을 가지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들이 입을 다문 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바로 나의 책임입니다.
결국은 개별 교사 저마다의 혁신이 트리거!
한편, 교사의 정치기본권이 주어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 개인의 각성과 도약이 필요합니다. 갇혀있던 스스로의 틀에서 누구의 힘도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깨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기본권 또한 교사 개개인의 각성과 도약의 힘으로 이루어 내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정치기본권이 주어졌을때를 가상하여 이미 성숙한 시민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결국 돌아 돌아 학교의 혁신보다 교사의 혁신이 답입니다. 이 혁신은 단순히 실력의 퀀텀점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개인을 가두는 사고방식의 틀을 혁신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혁신입니다. '교사가 왜 정치적 기본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가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가 갖고 있어야 비로소 그것을 가질 자격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저 제한하면 수용하고, 허용하면 누리는 자세는 어린아이의 자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스스로 '소유하지 않을 자유'를 가져버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잊지 말아야 겠어요.
감사합니다.
라떼교사의 슬기로운 교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너무 무거운 글을 썼네요. 그래도 결국 핵심을 보는 실력! 그 실력을 길러야 슬기로운 교사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무거운 주제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오늘 강민정 의원의 외침을 듣기도 했고요. 서이초건 교육이건 이 사회이건 나 개인이건 슬기로우려면 부유하지 않으려면 핵심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