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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ka Sep 23. 2020

나의 바다, 나의 크루즈

2. 보야져 호에 오면 유까를 찾아주세요

줄을 서고 기다려도 영어로 소통이 안 되는 답답한 마음에 에이, 모르겠다! 어머니는 프론트 데스크 저편에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코리아, 코리아’만 외치셨습니다.

낭만적인 크루즈 여행이 우리나라에서 효도 관광으로 각광받으며 평균 연령 75세의 아버님 어머님들이 찾아 주십니다.

등 따신 온돌방이 없어 불편하실테고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불편하실법도 한데 가이드님들을 따라 열심히 배 안을 누비세요. 역시 대한민국 엄마들 짱입니다. 어떤 분 손에 작은 쪽지가 들려있어요. 한국어로 또박또박 ‘유까 플리~즈’ 라고 써있네요.

유까는 제가 외국에서 쓰고 있는 이름입니다. 한국어 발음이 어려운 외국인들에게 제가 일본에서 불리던 이름 유까를 알려 줬더니 너무 쉽게 발음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영어이름 한 번 없이 유까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크루즈 관광이 늘어나면서 한번씩 다녀오신 분들은 저의 이름을 알게되고, 한국 직원이 필요하시면 저를 찾아가라고 여행사에서 가르쳐 주셨대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을 모르지만 탑승 하시기 전 부터 이미 저를 알고  오시는 분들이 계셔요.

제가 한국 아버님 어머님들한테 잘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 우리 부모님이 어디가셔도 누군가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적어도 비슷한 대접을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로얄 캐리비안 사의 Voyager of the Seas 는 내가 전속으로 몸담고 있는 배 입니다. 중국 시장에서는 해양 항해자 호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배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14만톤 급 입니다. 승객 정원 4천명, 승무원 정원 1천200명으로, 5200명이 동시 수용 되는, 떠다니는 15층 짜리 도시, 저는 그 중에서도 아마 키가 제일 작은 승무원 중의 하나 일 것 입니다.

짧은 다리로 축지법을 써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 한국인으로 매니저 자리에 오르게 되고,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매일 증명하며 살아요.

배가 남태평양 주변을 도는 코스인 호주 시즌에는 승객의 95%가 호주인으로 채워지고, 나머지도 영국이나 미국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이는 거대하고 외로운 도시에서 그들에게 인정 받은 것입니다.
볼품없이 작은 동양인도 세계를 상대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저는 그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저희 스케쥴은 6개월간은 계속 배에 타 있는 상태로 일을 한 후에, 2개월 간의 달콤한 귀국 휴가를 받습니다.
그 속에서 장장 6개월을 쉬지 않고 일하려면, 말은 물론 영어로 해야하지만 생각도 영어로 해야하고 꿈도 영어로 꾸어야 합니다.

천국에서 가장 가깝다는 섬, 남들은 평생에 한 번 신혼여행으로 가 볼법한 뉴칼레도니아를 일주일에 한번 간격으로 들어갑니다. 한 곳에 자주 가다보면 그곳의 바람이, 그곳의 냄새가 익숙해 집니다.

너무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은 곳 보다는, 현지인 들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곳을 위주로 즐겨 찾게 됩니다. 그 익숙함이라는 것에 편안해 질 때 쯤, 우리를 태운 배는 또 다른 낯선 도시에 도착 해 저를 내려 놓습니다.

몰랐던 도시들을 방문하며 동네 시장에 가서 이 곳 사람들은 어떻게 뭘 먹고 사나 구경 하는게 재미있더라구요.

크루즈 승무원이 되어 전세계 각국을 제한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도 사람 사는거 다 똑같더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허무하고 힘빠지는 소리를 하려고 그 많은 여행을 하나 싶으신가요 ?

그런데 정말로 신기하게도 어딜가고 사람사는 거 크게 다르지 않더라구요. 다 거기서 거기예요.

물론 여행을 많이 하다보면 누구나 제2의 고향이고 싶은, 맘 편한 곳은 생기겠지만, 그래도 결국은 사람들 사이에 정이 오가고, 서로 도우며 옥닥복닥 생활하는 모습은 세계 어딜가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앞으로 저의 얘기가 코로나 블루로 가득한 이 시기에 조금이나마 핑크빛 소통이 되길 바랍니다.

Bon Voy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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