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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ka Sep 23. 2020

나의 바다, 나의 크루즈

3. 뉴칼레도니아, 마치 그곳에 ‘사는’여자 처럼-(1)

가끔은 모든 것이 그냥 꿈을 꾼 것 같을 때가 있다.

남태평양이 그렇고, 배 안에서 당연하게 내 눈앞에 펼쳐지는 망망대해가 그렇고, 예쁜 구름들이 그렇다. 잠깐 한 곳에 머물다가 다시 배가 출항하려 할 때 올망졸망 우리 배를 올려다 보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 현지 사람들의 순수하고 선한 맑은 눈동자가 그렇다.

가장 깊은 곳을 지날 때는 수심 7천 미터 까지 깊어지는 남태평양 바다. 자연의 힘이런 정말 대단한 것이라서, 그 거대한 15층짜리 건물이 파도 하나로 기우뚱 기우뚱 거리고, 태풍이라도 만나면 실내에서도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심지어는 12층 발코니까지 파도가 들이닥칠 때도 있다. 그렇게 되면 배멀미를 하는 승객들도 많이 나오고, 불평을 호소하는 승객들도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런 승객들을 모시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 시키는 일도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그렇게 때로는 어렵사리 도착하는 우리의 목적지, 누메아.

3주만에 찾은 누메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강하지는 않지만 바닷가 마을 특유의 바람과 내음이 섞인 비..

저번주엔 IPM (In Port Manning - 말하자면 당직 같은것. 배가 어딘가에 정박해 있어 모든 사람들이 하선해 배가 비었을 때, 갑자기 생길 응급 상황에 대비해 순번을 정해, 그날은 밖에 나가지 못 하고 배 안에 남아서 지켜야 하는 당번) 이라서 배에서 아예 못 내렸었고, 그 저번 주에는 근무 하는 스케쥴이라 내릴 시간이 없었다. 또 그 저번 주에는 태풍이 와서 우리 배가 다른 도시로 회항을 했었다.

깊게 숨을 들이 마신다. 젖은 공기, 하지만 익숙한 이 공기.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오랜만이야. 나의 사랑 누메아”

오늘 나의 옷 차림은 집에서나 입는 편안한 롱스커트에 반팔 티셔츠. 동네에서 장보러가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마치 이곳 누메아에 사는 여자 처럼’ 컨셉이다.
그리고 까르푸의 장바구니를 둘러메고 (프랑스령인 이곳에서는 모든 프랑스 물건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까르푸가 크게 들어와 있어 현지인들이 장을 보러온다) 슬리퍼를 신고 배에서 내렸다. 마치 이곳 누메아에 ‘사는’여자 처럼.

누메아 -뉴칼레도니아의 수도- 는 내가 승무원이 되고 나서 첫 일정으로 왔던 곳이다. 바람이 부는 날씨에 쌀쌀했지만, 마음이 넉넉해 질 것 같은 이 곳 특유의 여유로운 공기가 내 몸을 타고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뉴칼레도니아가 좋았다. 나에게 처음으로 “승무원이라는게 이런거구나!”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고(출입국 수속이 우리에겐 이렇게 간단할 수가!), 항구 사이로 빠꼼 보이던 끝내주는 석양을 잊지 못했다. 남들은 평생에 한번 신혼여행으로나 왔다 갈뻔한 이 천국에 가장 가까운 섬을, 나는 (혼자서) 그 후 운 좋게도 일주일에 한번 꼴로 드나들었다.

호주 동부에서 비행기로는 약 두시간 남짓한 짧은 거리의 아름다운 이곳을, 우리는 천천히 항해하며 이틀에 거쳐온다. 그렇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면 비행기를 타야한다. 하지만 느긋하게 즐기며 치유하며 가고 싶을 때는 크루즈를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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