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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Jan 27. 2022

위기를 넘어 일상으로..

일상 에세이

고교시절, 나는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다녔다. 내가 타고 다니던 버스에 이미 타 있던 선배는 항상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선배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고등학교를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때여서 선배를 보면 괜히 반가웠다. 선배를 볼 때면 나는 항상 웃음으로 아는 척을 했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친구들과 함께 화장실로 불려 갔다. 버스에서 앉아 나를 보던 그 선배가 거기 있었다. 내심 반가웠다. 그런데 그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예상하던 말과 달랐다. 그 선배와 친구들은 나를 한가운데 몰아넣고 빙 둘러쌌다. 그리고 이런저런 소리를 쏟아내었다. "버스에서 그렇게 눈 똑바로 뜨고 보던 애가 애야?”, "눈 똑바로 뜨고 다시 봐라", "어디 한 번 다시 웃어봐!"


웃으면 복이 온다더니... 어른들의 말에 예외도 있음을 깨달은 날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들어갔던 그때, 나의 인생에서 그날은 큰 위기였다. 나는 그날 이후 학교 가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그 선배를 버스에서 또 마주치는 것이 괴로웠고 선배들이 또 화장실로 부를까 마음 졸였던 순간들. 마치 그 일이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되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갈 것만 같이 무섭고 두려웠던 그 시절. 다행히 선배들은 나를 다시 부르지 않았고 그때의 일은 서서히 잊혔다.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에서 수많은 위기를 만난다는 것이다. 인생의 위기는 오고 가는 시간을 예상을 할 수 없다. 언제 올지 또 언제 갈지.. 그렇기에 인생이 스펙터클한 영화 같고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것 아니겠는가. 소설에서 위기가 없으면 소설 구성 요소를 갖추지 못한 것처럼 인생의 위기도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처음엔 물론 당황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라고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위기의 등장은 날카로운 칼끝에 베이듯 아프고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베인 살은 잠시 피가 나고 멈추는 것 같이 위기를 만난 사람도 금세 그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 위기를 대처하기 위한 기지가 순간적으로 발휘되기도 하고 위기를 극복할만한 지혜가 내면에서 천천히 떠오르기도 한다.


위기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위키백과에 이렇게 쓰여있다.

"위기(危機)는 안전, 경제, 정치, 사회, 환경 등의 측면에서 개인, 조직, 지역 사회 또는 사회 전체에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수 있는 돌발적인 사건이다. 영어의 위기(crisis)는 그리스어의 크리시스(그리스어: κρίσις)에서 유래하였다."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수 있는 돌발적인 상황. 고속도로에서 커다란 장애물을 만난다던가 타이어가 급작스레 터진다던가, 앞차와 부딪힌다던가 주차하다가 차를 긁는다던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돌발적인 상황은 수없이 많다.


이는 앞일을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자 제약을 가진 인간의 당연한 결과이다. 오늘 만날 위기를 미리 알 수 있다면 당연히 그것을 피해 갈 수 있겠지만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른다. 오늘 내가 건널 다리가 무너진다면, 그리고 오늘 내가 들어갈 건물이 무너진다면 굳이 그 다리 위를 건널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그 무너질 건물 안에 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런저런 위기를 만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있는 만큼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하고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수란을 눈여겨보며 물가에 가지 말라면 그것을 따라 하루의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조금  적극적인 사람은 돈을 주고 부적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생의 위기를 피할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위기는 불시에,  생각지 못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마다 위기를 피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위기라면, 그것을 피할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기만의 위기 극복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위기를 겪은 후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사람마다 인생의 위기를 넘는 방법은 다르다.


누군가는 좋은 책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한 없이 울기도 한다. 또는 한적한 곳을 산책하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생각해보며 마음을 정리하기도 한다. 땀날 때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맛있는 것을 실컷 먹으며 자신에게 다가온 위기를 넘어가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방법을 다 써야 할 만큼 겪은 일이 아주 크게 느껴지는 위기도 있고, 이 중 한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한 정도의 위기도 있다.


이처럼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넘어 위기 이전의 삶과 같이 회복되려면,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나의 경우에는 글을 쓴다. 이 방법은 이전에는 잘 쓰지 않던 방법이었다. 아기가 기어 다니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빨며 걷기 시작할 무렵이면 모든 위험한 것을 치워야 했던 일들이 많았던 나는, 연필과 종이 같은 필기구를 내 옆에 항상 놓아둘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글쓰기는 나와 무관한 일이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생기고 여러 앱들을 깔아 글쓰기가 꼭 연필과 종이를 가지지 않아도 될 무렵부터 앱을 통해 나는 일상을 기록했다.


위기가 나에게 닥쳐왔을 때에도 그것은 나의 일상의 한 부분이었기에 나는 위기 상황에서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기록했고 그러고 나면 이리저리 얽힌 상황에서의 해결점을 나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얽힌 일들로 인해 뒤엉킨 감정의 실타래를 정리하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지금 나는 아이들도 많이 컸고 노트와 펜도 언제든 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겪는 일들을 글로 기록할 여유가 생겨 참 다행이다.


모든 인생의 위기는 기회다. 자신이 만난 위기를 넘어가려면 그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 마음의 크기와 생각의 크기가 이전보다 조금 더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는 생각과 마음을 넓히고 내면의 크기가 자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전에 없던 코로나로 몸도 마음도 힘든 지금 우리는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 속을 날마다 걷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이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보며 이 위기의 상황을 담담하고 넉넉히 바라볼 수 있길, 그리하여 모두 이 위기의 강을 함께 무사히 건너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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