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의 계절

로라 B 와이즈, <아이스크림의 지구사>를 읽고

밥통 속에 들어앉은 듯한 후덥지근함 속에서 느끼는 시원함. 세상 어떤 것과도 바꾸기 싫은 달콤한 시간. 아이스크림의 계절이 온다. 그 계절을 맞이하며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싶었다. <아이스크림의 지구사>는 그렇게 해서 내 손안에 들어왔다.

이 책의 초대의 글에는 음식의 역사에서 '발견'과 '발명'을 구분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포도가 부패하여 포도당이 생기고 자연스레 알코올로 변하면 포도주가 된다. 책에 따라 이것을 구분하자면, 이것은 '발견'이다. 반면에 곡물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 술은 '발명'이다. 아이스크림은 이처럼 '발견'과 '발명'의 역사를 거쳐 만들어졌다.

I scream, you scream,
we all scream for ice cream!!

"이탈리아의 젤라토, 프랑스 글라스, 러시아 모로네 노예라고 불리는 아이스크림은 일본의 도쿄, 미국의 덴버, 인도의 델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p15)

아이스크림의 종류와 의학적 효과

1775년 나폴리 출신의 필리포 발디니는 <데소 르베 티>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레몬과 딸기로 맛을 낸 소르베토를 포함한 다양한 얼린 디저트 요리법이 소개된다. 발디니는 내과 의사로 디저트의 의학적 효능을 주장했다. 예를 들면 계피 아이스크림은 고통이나 통증을 감해 주며, 레몬 아이스크림은 위장에,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무렵 빈첸초 코라도는 30가지 이상의 소르베토 요리법을 모은 책을 펴냈다. 여기는 재스민에서 석류에 이르는 다양한 맛의 소르베토 만드는 방법이 소개된다.

특정 계층의 사치품 

18세기의 설탕은 자물쇠까지 채워 보관해야 했을 만큼 귀했다. 달걀과 크림뿐 아니라 소금 등의 원재료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은 부유한 자들만 누릴 수 있던 사치품이었다. 멕시코에서 들여온 바닐라는 16세기 에스파냐 탐험가들에 의해 소개된 향료이다. 지금은 바닐라가 흔하지만, 아이스크림에 이 향료가 처음 사용되었을 때는 독특한 향취를 품은 이국적인 맛으로 여겨졌다.

아이스크림의 대중화

역사상 아이스크림의 대중화는 1718년 <메리 일스 부인의 요리법>을 발간할 때 즈음부터이다. 앤 여왕의 전담 제과사였던 그녀는 이 책에서 아이스크림을 얼리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얼음과 밀짚, 소금을 섞은 혼합물 약 9킬로그램을 통에 넣고 그 안에 크림이 담긴 냄비를 푹 담근다. 이때 냄비의 바깥 부분을 꼼꼼히 봉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냄비를 넣은 얼음통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 창고에 놓아둔다. 4시간 뒤면 크림이 단단하게 얼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도 사랑한 아이스크림

토머스 제퍼슨은 근처 강에서 채취한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얼음 창고를 만들었다. 마차 62대 분량의 얼음을 보관할 만큼 큰 규모였다. 이 창고는 육류나 유제품, 와인 등을 함께 차게 보관할 수 있었다.

워싱턴은 "얼음창고를 채우는 작업은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힘들"고, 또한 "평소처럼 얼음을 채취한 지 엿새째, 작업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과 수레들이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일기에 적었다. 1790년 여름 워싱턴이 아이스크림에 들인 돈은 200달러였다. 이즈음 미국 독립기념일에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며 국가의 탄생을 축하했다.

아이스크림 제조기 발명으로 대중화의 문을 열다.

1843년 낸시 존슨은 발명한 아이스크림 제조기의 특허를 받았다. 이 기계는 혼합물을 젓는 과정을 수월하게 해 주어 아이스크림 제조시간을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힘든 수고는 끝나고 드디어 대량생산의 길을 걷게 된다.

피카소, <밀짚모자를 쓰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남자>, 1938

아이스크림 콘의 등장

아이스크림 콘은 1904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아이스크림 콘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거기에 막대를 꽂은 빙과류, 초콜릿으로 감싼 아이스바 등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도 개발되었다.  밴과 트럭에 잔뜩 실은 아이스크림은, 이후 소환되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된다.

아이스크림 산업의 발전

냉동제 공급 이전 아이스크림은 주로 미국의 뉴잉글랜드나 노르웨이 등의 천연 얼음에 의존했다. 그러나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으로 얼음의 양이 줄어 얼음 품귀현상이 일었다. 또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은 하천을 오염시켜 천연 얼음을 사용할 수 없게 했다. 1919년 월터 피크스 교수가 펴낸 <아이스크림>이란 책에는 "379리터의 아이스크림 제조 및 저장, 운송에 거의 1톤에 가까운 양의 얼음이 필요하다"라고 쓰여 있다.

이후 냉동제 공급은 아이스크림 산업에 활기를 주었고, 고도의 기계화를 갖추어 성장 가속도가 붙었다. 그리하여 전쟁 중에도, 여행에서도 애용하는 식품이 된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은 군인들의 마음에는 진정을, 여행객들의 마음에는 휴식을 주었다.

아이스크림의 지구사를 나가며

저자는 마지막으로 세계 산업의 경쟁 구도를 살피며 아이스크림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또한 이 책을 감수한 분(주영하)께서는 한국 독자들을 위하여 친절하게도 한국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부록으로 첨부해 주셨다.

[메트로신문] ▲ /휴머니스트 제공

아이스크림의 제조와 세계화 과정을 책을 통해 살피는 내내 아이스크림이라는 간단한 주제로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현재의 아이스크림은 인류가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만들어낸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왕이나 대통령쯤 되어야 먹던 이것이 우리네 구멍가게에서도 판매하는 정도로 대중화된 것에 감사를…. 인류가 아이스크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아이스크림은 모난 마음은 녹이고 성난 마음은 진정시켜 준다는 것. 그리하여 아이스를 처음 발견했을 그때나 발명을 거듭하여 현재에 이른 지금이나 인류에게 아이스크림이 주는 것은 위로이다. 올여름도 밥통 같은 무더위를 이겨내도록 도울 이 아이스크림. 덕분에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