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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Apr 12. 2022

보다

손주현, <동물원에서 만난 세계사>를 읽고

눈을 가진 우리는 무엇이든 보고 또 본다. 물론 본 것은 많아도 내가 하루 종일 본 것이 특별히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주의 깊게 보지 않아 카페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나, 길거리에서 지나쳐간 사람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일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걸어도 그냥 다니지 않는다. 온갖 광고에 눈길을 주고, 거리의 모습 하나하나, 심지어 누군가가 먹다 버린 과자봉지와 담배꽁초, 까만 타이어처럼 보도블록에 늘어 붙은 껌도 이리저리 피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게다가 봄에 꽃이라도 피면 눈에 담는 것도 모자라 사진기를 들이대고 찍어댄다. 그럼에도 부족해서 이것저것 볼 것을 찾아다닌다. 영화와 미술 전시회, 박물관, 스포츠, 쇼핑 등은 우리가 목적을 가지고 보는 경우이다.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도서관에 구비된 활자들을 본다. 또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달로 손안에 볼거리들은 넘쳐난다.




<동물원에서 만난 세계사>에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볼거리를 위한 욕구 충족을 목적으로 동물들을 길들여 때론 가혹하고, 때로는 잔혹했던 역사적 사실을 작가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들로 재구성해 소개한다. 여기는 다음 몇 가지 이야기만 소개한다.


1. 권력자들의 보기 - 로마제국 , 왕들의 놀이터 미네저리


로마제국은 정복지 노예들을 검투사로 만들어 사자와 또는 다른 검투사와 싸우도록 하고 보기를 즐겼다. 사자가 나타나 한 명의 검투사를 찢는 사이, 다른 검투사들은 힘을 합쳐 칼로 사자를 찌른다. 인간과 동물이 오직 제국의 쾌락을 위해 볼거리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또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는 지상 최대의 서커스를 열었다. 코끼리 열두 마리와 사자 백 마리를 한 경기장에 몰아넣고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p96)


영국의 노르만 왕조를 세운 윌리엄 1세(1028-1087)는 우드 스톡에 큰 공원을 만들고, 자신만의 작은 동물원 ‘미네저리’(menegerie)를 만들었다. 왕들은 야생동물 들을 우리에 가두고 감상하는 것이 취미였다. 윌리엄 1세의 현손 존 왕(1167-1216)은 우드 스톡의 동물들을 런던탑으로 옮겼다. 그러나 동물들에 대한 연구가 아직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육사들은 맹수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잦았고, 동물들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다.

과거 사람들은 동물원의 동물들을 개인이나 나라의 권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좁은 공간에 진열했다. 이를 ‘미네저리’(menegerie)라 부른다. 16세기 후반까지 유럽의 모든 왕들은 사적인 미네저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미네 저리라는 말은 17세기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쓰였고 이국적인 동물들을 모아 놓은 것을 뜻하는 데,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 야생동물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2016.02.17일 자


2. 대중들의 보기 - 야생동물과 열등 인간


1900년대 초, 독일에서는 동물 서커스와 일반 대중을 위한 동물원이 증가했고, 그에 따라 야생동물의 수요가 늘었다. 독일인 하겐베크는 아프리카에서 동물을 사냥해 독일에서 팔았다. 하겐베크가 상품으로 내놓은 동물의 수효는 "사자 천 마리, 호랑이 삼사백 마리, 표범 육칠백 마리 이상, 곰 천 마리 이상, 하이에나 팔백 마리 이상"(p182)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잡혀온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우울증을 앓다가 죽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물 매입자들은 새끼를 잡아 어릴 때부터 동물원에서 키우기로 전략을 짠다. 그리고 사냥꾼들에게 새끼 야생동물을 요청한다. 그런데 이러한 발상은 야생동물들에게는 참 가혹한 일이었다. 코끼리 새끼를 잡기 위해서는 어른 코끼리를 집단으로 몰살해야 한다. 새끼 코끼리가 위험에 처하면 어른 코끼리가 둘러싸 새끼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새끼 코끼리 한 마리를 잡는데 열 마리가 넘는 어른 코끼리의 희생이 뒤따랐다.


그런데 코끼리뿐 아니라, "사자, 호랑이, 코뿔소  거의 모든 야생 동물은 어미를 먼저 죽이지 않으면 새끼를 잡을 수가 없다."  결과 수많은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들은 자신들의 새끼를 보호하려다가 희생제물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원에서 자라게 하겠다는 그들의 발상은 동물원 영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지만, 수많은 집단생활 야생 동물들의 죽음을 가져왔다.


그보다 더한 것은 "인간 특별 전시"였다. 1904년 세인트 루이스 만국 박람회에는 오타 벵가라는 아프리카 피그미족이 전시되었다. 그 전시에는 "진화가 덜 된 인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전시를 보는 사람들에게 진화가 덜 되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피그미족은 전시회에서 원숭이를 안고 있어야 했다. 박람회가 끝난 후, 뉴욕 브룽크스 동물원은 벵가를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사람에게서 돈을 주고 사서 동물원에서 전시를 한다.


벵가는 "해먹에서 잠을 잤고, 깨어 있을 때면 활을 만지작거리며 쏘는 시늉을 해야 했다. 다른 야생 동물과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피그미족이 입는 옷 외에 아무것도 걸치지 못했다."(p190) 사람들은 벵가에게 음료수 병, 과자 상자, 담배꽁초를 던지며 야유를 퍼부었고,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다. 후에 사람들 사이에 사람을 구경거리로 삼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동물원은 벵가를 풀어주게 된다. 하지만 그는 동물원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비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2017년 가족끼리 한 지방 동물원 방문 후, 일기에 남긴 기록은 여전히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며 이상 행동을 보이던 타조, 늑대, 호랑이, 라쿤, 스라소니, 원숭이들, 갇힌 앵무새와 잠자던 사막여우, 좁은 새장 속의 새들, 방 한 칸 정도의 우리 안에 갇혀 있던 버펄로. 새로 공사 중이었던 좁디좁은 코끼리 우리. 개체 간 싸움과 사육사 위협 방지를 위해 뿔 잘린 엘크, 여물통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료를 먹던, 예수님을 실어 날랐을 듯한 작은 나귀들, 우리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뻥튀기를 받아먹던 염소와 그 밖의 초식동물들, 과자 등의 먹이에 대한 제한 문구가 울타리에 적혀 있음에도 뻥튀기를 마구잡이로 주는 아이들. 동물원에서 본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많이 상하게 했다.. 아이는 동물원을 나오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 2017년 가을.
'구경'은 보는 것을 대상화하는 행위다. 친한 친구가 겪는 기쁨이나 아픔을 '구경'하지 않듯이, 코끼리의 생태를 알고 코끼리와 친구가 된 사람이라면 코끼리를 구경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거다. 우리가 '구경꾼'이 되는 것은 대상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킬 때다.
채운,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중에서(p153)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들의 아픔, 슬픔, 두려움은 그저 구경꾼들의 볼거리 중 하나가 될 뿐이다. 사람들의 보는 것에 대한 욕구는 역사적으로 인간과 동물이 생명을 가진 존재로써 존중받아야 할 마땅한 권리가 있었음을 간과했다.


다행히 21세기 동물원은 역사적으로 자행되었던 수많은 우울한 단계를 거쳐 많이 변화되었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 동물들의 행동 풍부화를 연구하고 동물의 복지(동물을 이용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를 위해 애쓰는 동물원이 이전에 비해 많아졌다.


더 나아가 동물의 권리, 즉 '동물도 인간과 똑같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이용해서도 안되고 고통을 주어서도 안된다. 따라서 원래 살던 곳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이러한 논의들로 인해 동물원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위한 더 밝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물원이라는 닫힌 공간이 동물들의 야생성을 보듬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과연 사람들의 보는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물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앞으로 동물원이 풀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곳을 방문한 지 벌써 5년이 지나간다. 그 동물원은 좀 바뀌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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