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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Mar 07. 2022

빨래를 널다가..

일상 에세이

예술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일상의 진정한 가치에 경의를 표하는 힘이 있다.
- 알랭 드 보통, 존 암스트롱 <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p56)


하루가 멀다 하고 세탁 바구니는 가득 차오르고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가는 세탁기. 세탁이 끝나면 빨래는 베란다라고 할만한 창 가까운 곳에 놓아둔 건조대 위로 옮겨진다. 빨래를 하나하나 널다 보면 옷 하나하나가 자식 같고 남편 같다. 햇빛 잘 드는 곳에 위치한 건조대 위에 하루 종일 널린 빨래. 그 위에서 마르는 빨래처럼 우리들의 촉촉한 일상도 밤이 되면 감기는 눈과 함께 마른다.  


요즘 우리 시대 젊은 아낙들은 날 저무는 저녁 빨랫감 가득 담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우물가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이야기 나누며 동네 사람들과 함께 빨래를 치대는 일은 요즘 우리들에게는 극히 드문 일이 되었다.

우물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빨래와 함께하는 우리네의 일상. 그나마 예전 우리 어머님들 세대에 비해 노동의 강도가 그리 세지 않아 다행이다. 우리나라에서 손으로 하던 빨래는 세탁기로 대체된 지 오래다. 요즘은 빨래 후 건조기를 사용하는 세대도 늘었다. 미국이나 캐나다 일반 가정들도 빨래를 밖에 널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집집마다 세탁기로 빨래를 돌려 건조기로 세탁물을 옮겨 넣고 말리면 빨래들이 뽀송하게 마른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에서 여인들의 삶을 그린 그림을 보면, 그들도 역시 빨래를 한 후 건물 옥상에 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빨래 너는 여인의 일상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다.

존 슬론,      <빨래>,    <지붕 위의 태양과 바람>
<1900년의 뉴욕풍경>

존 슬론(John Sloan)은 빛을 등지고 일하는 일상에 예술로 빛을 더해 준다. 그림 속 여인들은 고단한 노동의 중심인 빨래 앞에 서서 쉴 틈이 없다. 세찬 바람맞으며 굳게 서서 빨래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나부끼는 빨래들을 집게로 고정하는 것 또한 그녀들이 할 일.


건물 안에서 빨래를 너는 요즘 우리나라 아파트의 여인들과는 사뭇 다르나, 1900년대의 미국 뉴욕의 여인들도 널고 또 널어야 했던 것은 요즘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빨랫줄은 참 기발하나 위험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그들의 발명품은 요즘 미국의 거리에서 보기는 드물다. 하지만 지중해 거리에서는 아직도 유효한 장면인 듯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든, 건물 옥상에 널든, 아늑한 집 안에서 세탁기와 건조기로 돌리든 빨래는 우리네 일상의 한 부분이다. 그 일상의 한가운데. 거친 바람을 맞으며 선 여인들의 고달픈 삶 속으로 우리의 시선을 인도해 주는 예술가 덕에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일상은 빛이 더해지고 의미를 찾게 된다.


해를 등지고 일하는 우리 해보다 밝다. 바람을 막아선 우리 바람보다 강하다. 예술가의 시선과 함께 얻은 의미는 지루하게만 보일  있는 일상에 새로운 자각을 준다. 축축하게 젖은 빨래가 밝은 태양빛과 세찬 바람 덕분에 뽀송하게 마르듯, 일상의 축축하고 젖은 모든 것들도 누군가를 위해 고되게 일하는 우리의 존재로 인해 뽀송하게 마르고 유지되는  일상을 지나 하루를 마감하며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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