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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Feb 10. 2022

내 생의 동반자 '라면'에 대하여

일상 에세이

나 어릴 적에는 라면이 거의 두세 종류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삼0라면과 농0라면.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클로렐라가 들어간 라면을 한 박스 사 오셨다. 라면을 먹이는 것에 대한 꺼림칙함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셨을까. 아니면 면이라도 건강하게 먹이려 하셨나 보다. 이전에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라면이었다. 초록색 가루가 들어가 면이 초록색이었는데, 많이 맵지 않은 맹숭맹숭했던 맛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래도 라면 좋아하던 나는 그것을 매일 하나씩 먹었다.


세월이 지나 라면은 가짓수가 참 다양해졌다. 그래도 나는 개인적으로 농0 신라면과 너구리를 좋아했다. 그들을 향한 나의 일편단심은 가실 줄 몰랐다. 맵고 칼칼한 자극적인 맛이 그리우면 신라면을, 적당히 구수하고 우동처럼 통통한 면발이 그리울 땐 너구리를 먹으면 그만이었다. 사발면을 먹어야 할 때면 육개장과 김치사발면을 골랐고 양이 적다 싶을 때는 왕뚜껑을 골랐다. 집에서 끓이는 라면도 맛있었고, 파와 계란이 적절히 섞인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도 어찌 그리 사랑스러웠는지.  


그러다 결혼을 했고 아기를 가졌는데, 첫째 때는 입덧이 엄청 심했다. 다른 것을 먹으면 울렁거려 끼니마다 라면을 먹었더랬다. 지금 그 아이는 라면을 별로 안 좋아한다. 아기였을 때 너무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매운 것도 싫어하고. 지금 생각하니 그때 아기였던 첫째에게 약간 미안하다.


그런데 아기를 키우면 키울수록 멀리하게 되는 것이 인스턴트이다. 자연히 라면은 우리 집 식단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온 몸에 힘이 없어 아이들 밥을 챙길 수 없을 때 가끔 한 번씩 먹곤 했다. 그러나 한 달에 한두 번 먹어도 그 맛은 아이들의 머리에 이미 각인이 되었다. 맛에 대하여 아이들은 정직하다. 내가 하는 음식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오묘하고 기막힌 맛을 아이들이 어찌 잊으리.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어느 순간부터 라면은 우리 집 인기 메뉴가 되었다. 생일에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라면'이라고 하는 아이가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라면의 가짓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해졌다. 볶음면과 비빔면, 우동과 짜장을 흉내 낸 면들, 그 종류와 맛의 다양성으로 인해 맛보기도 전에 폐기되는 라면의 종류들도 많아졌다. 라면을 이용한 요리도 예전에 부대찌개나 김치찌개에 면을 넣어 끓여 먹던 때와 달리 조리법이 넘쳐난다.


김치를 넣은 김치라면, 카레를 넣은 카레라면, 치즈를 넣은 치즈라면, 쌈장을 넣어 만든 쌈장라면, 콩나물 넣은 해장라면, 굴 넣은 굴라면, 심지어 된장라면까지. 딸내미가 라면에 계란 넣는 팁을  인스타에서 보았다며 가르쳐 주었다. 라면 봉지 그림에 계란 있는 것은 계란을 넣어야 더 맛있고, 계란 없는 것은 계란을 안 넣으면 더 맛있다고. 그래서 정말로 계란 그림이 없는 것에 계란을 안 넣었더니 더 맛있었던 것은 느낌뿐이었을까.


갖가지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더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맛으로 치장한 라면부터 이전부터 오직 한 가지의 라면만 고수하는 자들을 배려하는 센스까지 라면업계의 불은 꺼지지 않고 오늘도 실험과 계발을 통하여 발전을 거듭한다. 과연 미래에는 어느 정도로 다양한 라면이 나올지 기대된다. (참고로 나는 라면 업계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알려 둔다.)


인스턴트라는 이유로 선택이 꺼려지면서도 그 맛의 향연으로 이끄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이처럼 내가 라면을 좋아한다 해도 라면은 우리 집에서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라면에 길들여진 입맛은 다른 음식들로 채울 수 없다. 또 아이들을 라면으로만 키울 수 없기에 나는 내 기호를 과감히 내려놓는다. 장 볼 때 한봉지에 5개 묶인 정도나 아예 사지도 않을 때도 많으니. 그리고 여행 갈 때나 아니면 주말에 즐기는 정도이다.


내가 어릴 적 얼마나 라면을 좋아했던지,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커서 라면 공장 사장님과 결혼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참 어이가 없다. 결혼이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얻고자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는 건, 라면 공장 사장님 부인은 매일 라면을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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