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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Feb 17. 2022

'이'방인과 떠돌'이'

일상 에세이

몇 년 전, 이가 썩었다.  잇몸이 붓고 시리고 아구가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아프고.. 여러 날 계속되던 통증에 이가 아프면 치과에 빨리 가라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치과에 갔다. 앓던 이를 빼니 시원하고 살 것 같았다. 그 썩은 이 아래 신경도 다 무너져가고 있어서 신경도 뿌리째 뽑아야 했다. 임플란트까지 하라는 말은 안 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한 처치를 원했으나 신경치료에 이를 씌우는 것까지는 해야 했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가짜로 만든 이를 대고 본드로 붙이는 작업까지 하고 마무리했다.


문제는 그 후에 생겼다. 아픈 이를 달고 다니던 때는 그래도 단맛은 달게 쓴 맛은 쓰게 느낄 수 있었으나 가짜 이를 하고 난 뒤에는 이의 모양과 형태는 있을지 모르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왼쪽 얼굴의 근육은 아프고 입 안에서는 아무 맛을 느끼지 못했다. 음식이 들어오면 의무감으로 씹었다. 아니, 그저 짓이긴다는 표현이 맞았겠다.


새로 들인 이가 내 몸의 일부 같지 않았다. 모양은 '이'와 똑같은데 그저 '이'방인이다. 가족도 아닌 누군가가 입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 아무 상관없는 플라스틱 조가리가 입안에 자리하고 음식들과 굴러다니는 느낌이랄까? 신경이 없어져서였을까?


몸의 일부를 바꾸는 것은 이전의 상태로의 회복이 아닌 새로운 기구들과의 동거이다. 첨단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내 존재의 일부로 자리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물건이 내 몸의 일부로 여겨질 때까지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이전에 내가 음식을 먹고 어떻게 맛을 느꼈었는지를 회상하며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밥 먹다가 이가 깨졌다. 그 며칠 전부터 입이 잘 안 벌어졌다. 밥을 먹을 때나 하품할 때 안면근육 마비가 오듯 불편했다. 급기야 밥을 먹는데 이가 깨져 입안 가득한 밥 사이로 굴러다녔다. 떠돌'이'. 깨진 이를 살펴보니 이미 어느 정도 썩어 있었다. 이전에 음식이 끼던 것을 치실로 빼낼 때마다 틈 사이로 실이 끼던 곳이 아니었나 싶었다.


다시 치과에 갔다. 썩은 곳을 도려내고 이번에는 치과에서 마련해 준 새로운 금 조각을 끼었다. 이가 아프고 마비 증상이 있던 것이 없어졌다. 썩어가던 이를 모르고 마비가 올 때까지 놓아 두고 있었는데 깨진 이로 인해 썩은 부분이 드러나고 치료받아서 다시 나아진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맛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로는 이에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가 아프다.  며칠 달달 거리들을 입에 달고 살아서 그랬나. 그런데 다시 치과 가기가 무섭다. 어릴 때도 치과가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무서울 줄은. 그나저나 빨리 가야겠다.  공사가 커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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