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몇 년 전, 이가 썩었다. 잇몸이 붓고 시리고 아구가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아프고.. 여러 날 계속되던 통증에 이가 아프면 치과에 빨리 가라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치과에 갔다. 앓던 이를 빼니 시원하고 살 것 같았다. 그 썩은 이 아래 신경도 다 무너져가고 있어서 신경도 뿌리째 뽑아야 했다. 임플란트까지 하라는 말은 안 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한 처치를 원했으나 신경치료에 이를 씌우는 것까지는 해야 했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가짜로 만든 이를 대고 본드로 붙이는 작업까지 하고 마무리했다.
문제는 그 후에 생겼다. 아픈 이를 달고 다니던 때는 그래도 단맛은 달게 쓴 맛은 쓰게 느낄 수 있었으나 가짜 이를 하고 난 뒤에는 이의 모양과 형태는 있을지 모르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왼쪽 얼굴의 근육은 아프고 입 안에서는 아무 맛을 느끼지 못했다. 음식이 들어오면 의무감으로 씹었다. 아니, 그저 짓이긴다는 표현이 맞았겠다.
새로 들인 이가 내 몸의 일부 같지 않았다. 모양은 '이'와 똑같은데 그저 '이'방인이다. 가족도 아닌 누군가가 입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 아무 상관없는 플라스틱 조가리가 입안에 자리하고 음식들과 굴러다니는 느낌이랄까? 신경이 없어져서였을까?
몸의 일부를 바꾸는 것은 이전의 상태로의 회복이 아닌 새로운 기구들과의 동거이다. 첨단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내 존재의 일부로 자리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물건이 내 몸의 일부로 여겨질 때까지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이전에 내가 음식을 먹고 어떻게 맛을 느꼈었는지를 회상하며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밥 먹다가 이가 깨졌다. 그 며칠 전부터 입이 잘 안 벌어졌다. 밥을 먹을 때나 하품할 때 안면근육 마비가 오듯 불편했다. 급기야 밥을 먹는데 이가 깨져 입안 가득한 밥 사이로 굴러다녔다. 떠돌'이'. 깨진 이를 살펴보니 이미 어느 정도 썩어 있었다. 이전에 음식이 끼던 것을 치실로 빼낼 때마다 틈 사이로 실이 끼던 곳이 아니었나 싶었다.
다시 치과에 갔다. 썩은 곳을 도려내고 이번에는 치과에서 마련해 준 새로운 금 조각을 끼었다. 이가 아프고 마비 증상이 있던 것이 없어졌다. 썩어가던 이를 모르고 마비가 올 때까지 놓아 두고 있었는데 깨진 이로 인해 썩은 부분이 드러나고 치료받아서 다시 나아진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맛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로는 이에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그런데 또 이가 아프다. 요 며칠 달달 거리들을 입에 달고 살아서 그랬나. 그런데 다시 치과 가기가 무섭다. 어릴 때도 치과가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무서울 줄은. 그나저나 빨리 가야겠다. 더 공사가 커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