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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술 일상

피터르 브뤼헐 (Pieter Bruegel)

<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중에서

by stray

나이 든 우리네 기억 저편에는 어린 시절 놀이 한두 가지쯤은 자리한다. 그때는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무궁화 꽃을 피우다 말고, 우리 집에 왜 왔냐고 묻고, 얼음 땡을 하며 뛰다가, 철퍼덕 땅에 주저앉아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돌을 굴리며 땅따먹기도 했었다. 밥 먹으러 가는 것도 잊고, 동네 친구들과 저녁까지 놀다 보면 엄마가 왜 그리 늦었냐고 묻던 시절. 그때 하던 놀이들은 그렇게 재미있었고, 웃음이 그치지 않았었다.


여기 르네상스 유럽의 한 화가, 피터르 브뤼헐( Pieter Bruegel the Elder, 1527 - 1569)이 당시 어린아이들이 놀던 모습을 익살스레 그린 그림이 있다.


1. 풍속화


굴렁쇠놀이, 공기놀이, 말뚝박기,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잡는 놀이도 등장한다. 우리나라와 장소도, 시대도 다르지만 당시 어린아이들의 게임은 우리나라 어린아이들 노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1560, <아이들의 놀이>, 패널에 유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브뤼헐은 아이들의 장난기를 가득 담은 장면뿐 아니라,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도록 네덜란드에서 쓰이는 속담 126가지를 그림으로 그렸다.


"작품 속에는 부정한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게 푸른 외투를 머리 깊숙이 씌우는 모습도 보이고, 악마에게 촛불을 바치는 사람, 기둥을 무는 사람, 고양이 목에 구슬을 다는 사람, 돼지에게 장미꽃을 뿌리는 사람, 소가 물에 빠져 죽고 나서야 연못을 메우는 사람, 한 손에는 물 다른 한 손에는 불을 나르는 사람, 벽에 머리를 찧는 사람,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모습, 돼지의 털을 깎는 사람, 바구니로 물을 나르는 사람, 이솝우화 속의 학과 여우의 식사 등 인간의 어리석음과 위선, 기만 등을 꼬집는 세밀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 출처: 두산백과
1559, <네덜란드 속담>, 패널에 유채, 베를린 국립미술관 소장


2. 풍경화


브뤼헐은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의 화가이다. 그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수학한 후 이탈리아로 여행을 결심한다. 당시 플랑드르는 프랑스 북부에서 네덜란드, 벨기에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육로와 해로 두 가지 경로가 있었다. 브뤼헐은 안트베르펜에서 프랑스 리옹을 거쳐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가는 육로를 택했다. 지금은 알프스 산을 낭만적으로 여기나 그때만 해도 알프스에 정령과 악마가 산다고 여겼다. 그 험난한 지형을 걸어서 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산을 넘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스케치하여 나중에 판화로 남긴 작품들은 우리나라 조선 후기 정선의 진경산수화 금강전도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당시의 회화는 곧 종교화라는 공식이 유행하던 때였는데, 그는 “풍경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1555, <알프스 산맥의 풍경>, 판화, 벨기에 왕립도서관 소장


3. 풍경 속 종교화


또한 브뤼헐은 성경의 내용을 소재로 그림을 많이 남겼다. 아래 세 그림은 구약 성경의 <바벨탑>과 신약성경의 <영아 학살>, <베들레헴 인구조사>를 주제로 그 나름의 해석을 담아 그린 작품이다.

1563, <바벨탑>, 패널에 유채, 빈 미술관 소장


1565-1567, <영아살해>, 패널에 유채, Royal Collection Trust 영국 런던


1566, <베들레헴 인구조사>, 패널에 유채,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브뤼셀 소장

이스라엘 베들레헴 지역은 눈이 안 내린다. 위 <베들레헴 인구조사>의 눈 내린 풍경은 실제 이스라엘에서는 볼 수 없다. 브뤼헐이 자신이 사는 북부 플랑드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그림 왼쪽 건물에는 세금을 내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건물 벽에는 붉은색 바탕의 합스부르크 문장이 보인다. 그것은 이 지역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곳임을 말해준다.


스페인에서 북쪽까지 온 세금징수원은 지금 인두세를 걷는 중이다. 당시의 인두세는 개개인 '한 명당 얼마'를 내는 “단순 징세 방식”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세금이 동일하다. 자식이 많을수록 세금도 높아 인두세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더 가혹했다. 넉넉하지 못한 식량, 추운 날씨, 세금으로 시름이 깊었던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이 위 그림에 담겨 있다. 브뤼헐은 이처럼 종종 풍경화 속에 종교적 주제를 융합시켜 표현하곤 했다.


나가며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 브뤼헐은 풍속화와 풍경화를 많이 남겼다. 그가 그린 풍속화에는 풍자와 해학이 가득 담겨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재치와 유머는 꼭 필요하다. 그가 그린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그의 재치와 유머를 누린다면, 그의 회화는 '지금 여기에서' 할 일을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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