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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술 일상

아이의 그림

일상 에세이

by stray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둘째는 선 하나를 그어도 꼭 자를 대고 그린다. 앞 머리카락을 자기가 잘랐는데 고르지 못한 일직선이 신경 쓰여 자르고 자르다 결국 앞머리가 눈썹 위로 올라갈 뻔했다. 옆머린지 앞머린지 구분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선을 기대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바닷가에 놀러 가면 모래에 닿기 싫어 모래를 멀리하고 엄마 품에만 안겨 있던 아이. 볶음밥 속 호박과 당근을 가시 골라내듯 하며, 생선을 먹을 때는 생선살 속 가시를 다 골라낼 때까지 밥을 뜨지 않는다.


그런 둘째가 몇 년 전, 학교에서 그림을 그렸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인데.' 했다. 빛 광자가 새겨진 빨간 바탕, 검은 산 위 동그란 해. 익숙한 네모 안 그림.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는 그 네모난 카드를 이 아이가 본 적이 없을 텐데도 내가 그 그림이 떠오른 건 내게 너무 익숙했기 때문일 거다. 사람은 자기가 익숙한 대로 생각하기 마련이니. 그때 이후, 내 선입견을 버리고자 아이의 그림을 냉장고에 붙여 놓고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 오늘 보니 새로운 발견. 이건 모네의 해돋이 인상이 울고 갈 정도로 섬세함이 고루 벤 그림이 아닌가.


그라데이션이 주를 이룬 서양의 수채화에 동양화의 수묵 담채 기법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산. 그 사이에 동그란 미소 수줍게 드러낸 붉은 해가 산과 하늘의 경계, 중앙에서 약간 비낀 곳에서 떠오르고. 밝아오는 아침 엷은 빛은 아직 검푸른 하늘빛을 다 감싸지 못해 노랗게 물들었다. 산등성이 경계는 진하나 내려올수록 색이 점점 엷어져가고. 산은 아침 어스름에 아직도 잠들어 깨지 못한 듯 검은빛, 푸른빛이 조화롭다. 새들은 무리 지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하늘은 잠 깨어 일어날 준비 다 되었다.


산 그림자를 표현하느라 조심스레 색을 섞고 몇 겹으로 칠한 너의 붓 자국. 그라데이션을 넣으면서도 색이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을 아이. 해는 번지면 안 되고 물기 마르기 전에 색을 칠해야 한다는 조바심도.. 엄마 눈에는 네 마음이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보다 보니 나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내 눈엔 딱 명화인데. 어디 미술관에 걸릴 자리라도 알아봐야 할까. 누군가의 부름을 조용히 기다리는 아이의 그림. 액자에 넣어 미술관에 걸릴 그때까지만, 우리 집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 감상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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