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아이들 어릴 때, 남편과 나는 자연을 가까이하며 심신을 쉬고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가족 여행 코스 중 하나로 산행을 했다. 집 가까이 있는 산에도 올랐었고, 남편 휴가나 어쩌다 쉬는 날이면 먼 산을 일부러 찾아가 캠핑을 하기도 했다. 산에 가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이들은 힘들게 산을 왜 가야 하냐고 묻곤 했다. 아이들이 크자 아이들의 반발은 더 거세고 드세졌다.
우리는 사탕, 아이스크림, 컵라면 등으로 산행을 유도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 정도만으로도 족했다. 좀 더 커서는 산행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짜장면이나 탕수육, 또는 바지락 칼국수, 냉면 등의 외식으로 겨우 설득해 함께 산행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좀 더 크니 그것도 안 통했다. 우리 마음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황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이런저런 반발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 때도 있었고 정말 가기 싫은 한 두 명은 빠진 적도 있었다. 아이들 별로 다른 계획이 생기는 등 모두가 함께 하기엔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과의 적절한 타협안을 찾아 그래도 최대한 함께 하려 했다. 우리 가족이 산을 오르내리며 함께 쌓은 추억들은 그런 노력을 거쳐 얻은 값진 것들이었다.
한 번은 아이들과 지리산에 올랐다. 노고단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을 거쳐 반야봉까지 가는 길은 편도 8km. 오가는데 16km였다. 그때 첫째가 중1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초등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갔다 오는 것이 무리일까 봐 망설여졌다. 그래도 한 번 도전하기로 하고 출발했는데… 힘들어할 줄 알았던 아이들은 오히려 멀쩡하게 산을 날아다녔다. 내가 제일 느릿느릿, 후들후들거리며 갔다 왔다. 아이들이 산에서 즉석으로 마련해준 지팡이 덕분에 겨우 살았다.
올해 5월 5일 어린이날 이벤트로 첫째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오랜만에 등산을 가자는 것이었다. 집에만 있던 시간이 길어서였는지 숙제가 있다는 한 명 빼고 다른 아이들은 쉽게 동의했다. 집에 남겨 놓을 한 명을 위해 따로 식사를 준비해 놓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다. 그래도 나머지 아이들과 만이라도 산에 가도 좋을 듯했다. 게다가 이제 밖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때가 되었고 사람이 많으면 거리두기를 하며 올라가면 되겠다 싶었다. 우리는 이번에는 지리산 노고단까지만 가기로 했다.
다음 날의 일정을 잡고 이것저것 떠날 준비를 하며 그동안 부족했던 야외활동을 할 수 있음에 마음이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혼자 남아 있을 아이의 밥을 준비해 놓아야 했기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아침 일찍 일어나 어묵국을 끓이고 김밥도 준비하고 과일과 물도 챙겨 산으로 갔다. 그날은 적당히 해가 비치고 바람도 선선해 산에 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준비해온 김밥 반을 먼저 먹고 출발했다. 곰이 나올 수도 있다는 안내표지판 설명을 읽으며 우리가 곰을 만날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한 편으로 긴장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산을 오른 것은 2019년이 마지막이었다. 산은 그동안 우리가 왜 거기에 못 갔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 가족, 그리고 이 나라와 세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산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산은 그저 거기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해와 다름없는 반가운 신록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딸내미가 자신이 쓰려고 긴 나뭇가지를 들고 땅을 짚으며 걷다가 예전에 그랬듯 나를 보더니 지팡이를 내게 양보했다. 정말 고마웠다. 아이들은 눈앞에서 어느새 사라졌다. 체력이 저조해진 나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남은 남편이 아이들 뒤에서 나와 함께 발을 맞추며 천천히 걸었다. 급할 것이 없으니 새로 난 나뭇잎들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에서 난 나뭇잎은 부서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반사하며 반짝거렸다. 새소리도 듣고 나무 냄새도 맡고, 흐르는 개울 소리도 들으며 산을 올랐다.
답답했던 지난 시절 덕분인지 또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산행을 즐겼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산에 사람들도 많았다. 끝없어 보이는 돌계단을 올라야 할 때도 있어 부담스럽긴 했어도 천천히 가니 노고단 대피소까지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과일과 물, 간식으로 잠깐 쉼을 갖고 그다음 목표지점인 노고단 정상까지 갔다. 산 능선이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잠시 쉬다가 산을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괜찮았는데 내려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차까지 와서 준비해온 컵라면과 김밥으로 산행을 마무리했다.
마스크 없이 산을 오를 수 있어 숨 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산을 오르고 나니 머릿속과 몸과 마음 모두 산속 공기로 맑게 씻긴 듯했다.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모인 책, 산. 그 책의 등장인물들인 숨 쉬는 나무와 새와 다람쥐, 작은 꽃들, 벌레들, 그리고 하늘. 그들의 페이지가 거기에 펼쳐져 있었다. 산은 나보고 똑바로 걸으라 빨리 걸으라 주문하지 않았다. 느릿느릿 걸어도 좋고 후들후들 거려도 괜찮다고 말해주며 책을 좀 읽어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등장인물들의 갖가지 모험 가득한 산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했다. 산을 친구 삼아 지팡이 짚고 걷는 산과의 동행은 산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는 온갖 이야기들을 온몸으로 읽으며 걷는 것이다. 온 인격의 숨을 고르게 해 주는 산. 마스크 없는 온전한 숨을 쉬며 온갖 숨 쉬는 것들로 채워진 산행. 그로 인해 몸도 마음도 쉼을 얻고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올해 어린이날 산행 이벤트는 아이들 덕분에 우리가 누린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다. 뜻밖에 간 산행은 아이들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우리에게 준 어버이날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