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는 동화
아기는 태어날 때 동그란 아우라를 머리에 붙이고 태어났다. 엄마는 아이의 생김새가 특별해 보였다. 시원시원한 이마는 탁 트인 초원 같았고,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같이 그윽했다. 응애 하는 울음소리도 거대한 폭포 소리처럼 우렁찼다. 동그란 아우라가 머리 위를 비추는 아이를 보면 날개만 없는 천사 같았다. 엄마는 아이의 이름에 영화로울 영(榮) 자를 썼다.
영이는 참 신기한 아이였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밤에는 스탠드를 설치하지 않아도 방 안이 환해서 다른 것을 찾기도 편했다. 밤에 혼자 화장실 갈 때도 불을 안 켜도 괜찮았다. 그리고 아이가 비추는 아우라의 빛이 다른 사람에게 비치면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은 그로 인해 마음이 안정되었다. 다툼이 있는 곳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영이는 하루 종일 먹고 자더니 잘도 자라 뒤집기를 했다. 영이가 뒤집기를 할 때는 머리 위 아우라도 함께 올라왔다. 머리를 들고 한참을 있는데 영이 머리 위의 아우라가 빛나 보였다. 배밀이를 하다가 두 다리를 굽혀 기기도 하고 물건을 잡고 서기도 하더니 걷기 시작했다. 아이의 머리는 더 빛났고 엄마는 아이의 아우라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아이는 어떻게 자라게 될까?'
아이는 점점 자라 유치원에 갔다. 아이를 보는 사람들마다 아이 머리 위의 아우라를 먼저 봤다. 보는 사람마다 "이건 뭔가요?"하고 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어요."하고 대답하면 "우와!! 이 아이는 정말 큰 사람이 될 것 같아요. 이런 것을 가지고 태어나다니." 영이의 아우라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이를 주목하게 했고 사람들은 아이가 무언가 큰 일을 하리라 기대하며 바라보곤 했다.
영이가 가지고 태어난 것이 사람들에게는 없었다. 때로 다른 엄마들은 시기와 질투를 보이기도 했다. 다 아우라 때문이었다. 다른 엄마들은 영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아우라 덕분에 더 빛나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이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오히려 말이 느리고 문자나 수를 익히는 것이 재빠르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반대로 아이를 무시하고 비웃기도 했다. 처음 가졌던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이도 자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보게 되었다. 거울을 보며 왜 다른 사람들에겐 없는 아우라가 자신에게 있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아이가 자랄수록 아이에게 있는 아우라가 아이를 오히려 위축되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의 아우라에 의미를 부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특별한 것을 가지고 태어난단다. 그건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는 데 쓰이는 도구가 되지. 넌 네게 있는 것으로 언젠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네가 가진 것을 잘 가꾸고 소중히 여기면 된단다."
그러나 아이는 아우라로 인해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무시하고 비웃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진 아우라가 차라리 없었다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면 기대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이 가진 아우라를 감추려 그때부터 모자를 쓰게 되었다. 모자 속에 자신을 감추니 사람들이 자신의 아우라를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호감이나 기대보다 오히려 자신을 평범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아이는 오히려 그것이 맘 편했고 행동하기도 자유로웠다.
그렇지만 모자를 항상 쓰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별히 모자를 벗어야 할 때는 학교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영이의 마음을 모르셨다. 그래서 수업시간에는 모자를 벗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모자를 벗어야 할 때 아이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 앞에서 자신의 아우라로 빛나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영이가 부럽기도 하고 신기해서 다가서지만 아우라 때문에 가졌던 호감이 사라지면 영이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이가 교실에서 수업하던 중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굵은 비가 내리고 번개가 내리치더니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밖도 칠흑같이 어두운데 교실 안도 함께 어두컴컴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아이들은 무서워 떨었다. 그때 영이의 아우라는 더 빛나기 시작했다. 영이의 아우라는 아이들의 머리 위를 환하게 비춰 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영이로 인해 빛났고 아이들의 표정은 환해졌다. 부들부들 떨리던 아이들의 마음도 영이의 아우라가 비쳐 주는 빛과 함께 침착하게 가라앉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영이는 자신의 아우라를 모자로 가리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의 아우라는 교실 안을 환하게 비춰주는 등불 같은 역할을 했고 어두운 곳을 밝혀 주었다. 영이의 아우라는 이제 부러움과 시기, 질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모습을 가졌다고 영이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영이도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위축되지 않았고 자신이 때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 갈수록 머리 위에 붙어 있던 아우라는 사라져 갔다. 영이의 아우라는 더 이상 영이의 머리 위에서 아이와 세상을 비춰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우라가 영이에게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아우라는 이제 영이의 마음속으로 옮겨 자리하게 되었다.
엄마는 아이가 자라 감에 따라 아우라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눈에 보이던 아우라가 사라져서 오히려 다행이야. 아이의 앞날은 아이의 내면의 아우라가 비쳐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 머리 위를 비추던 아우라는 사라졌으나, 영이는 여전히 그 내면의 빛으로 세상을 빛내주는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다 자라난 영이를 보는 사람들은 원래 영이가 머리 위에 아우라를 붙이고 태어났던 아이인지 모른다. 그러나 영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아우라로 인해 영이 곁에 있는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느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