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왔다. 바람이 온 물건을 날려 버릴 것처럼 불었다. 나뭇가지들은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바람 따라 흔들렸고 집에 꼭 붙어 있는 유리창마저 떨어질 듯 덜컹거렸다. 온 세상이 바람의 세기에 놀란 듯 다들 제 자리에서 몸을 더 곧고 바르게 가다듬었고 땅에 꼭 붙어 있고자 손아귀에 힘을 준 듯 경직되었던 그 시간.
거리엔 약속한 것처럼 사람의 발걸음이나 차량의 통행이 뜸했다. 세찬 바람에 몸이 날아갈까 더 무거운 것으로 몸을 눌러야 하나, 창문이 깨질까 봐 테이프로 창을 붙들어 매야 하나, 돌이라도 날아와 유리가 깨질까 이불이라도 뒤집어써야 하나 고민하며 숨죽이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창밖 하늘을 유유히 나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바람이 모든 것을 날릴 듯이 세게 부니 땅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고 그에게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때는 위험하니 빨리 내려오라고 아무도 소리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급한 바람에게 왜 이리 급하냐고 물으며 천천히 날았다.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치솟았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가 싶다가도 다음 바람이 거칠게 그를 위로 다시 솟구치게 하면 또다시 하늘 위를 날았다.
그것은 바로 까만 비닐.
평소에 작은 마트에서 물건을 담아 주는 용도로 쓰이는 그것은 색이 까매서 예쁘거나 화려하지 않다. 커다란 물건을 담기엔 작고, 연약한 손잡이로 무거운 무게를 견디기엔 역부족이며, 어쩌다가 뾰족한 것에 부딪히면 찢어지기 십상이다. 그는 그저 물건을 담았을 때 포장 무게에 눌리지 않도록 가벼우면 그만이다.
그는 모두가 우러르는 귀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 하나 주목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애착 가는 물건으로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다. 그 덕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또한 그는 누군가로부터 찬사나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가벼움 자체였던 그는 얽매임이나 두려움 없이 하늘을 날았다.
하늘 위로 내던져진 그 시간, 감수해야 하는 위험은 그가 감당할 몫이 아니었다. 그 물건은 자신의 움직임으로 자유를 그리고 있었다. 거센 바람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