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에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저녁으로 먹을 꽃게를 사 왔다. 게의 몸통만 15센티는 넘을 듯한 큰 것부터 조금 작은 것까지 6마리. 무게를 재보니 다해서 2킬로그램 정도였다.
조금 숨이 붙어 있어 약간씩 움직이던 게들을 물에 대충 씻어 냄비에 넣어 고춧가루, 양파, 간장을 넣고 물과 함께 끓이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약하게 움직이던 게들은 끓는 물속에서 마침내 잠잠해졌다.
남편이 저녁 식탁에 오른 게들을 반씩 잘라 접시에 놓으니 접시 위로 수북하게 쌓여 푸짐해 보였다. 오랜만에 게를 본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껍질 속의 살을 발라 먹을 수 있는 꼬챙이를 사용하다가 답답한지 이내 다 던지고 손과 이빨을 사용하는 게 더 편하다며 게걸스레 게를 발라 먹었다.
아이들은 얼마 만에 본 꽃게인지 연수를 세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게를 위주로 한 대화들이 오갔다. 오늘 먹는 게는 왜 이렇게 껍질이 흐물거리는지, 예전에 먹은 게는 왜 그렇게 껍질이 딱딱했는지, 어떤 게는 맛있고 어떤 게는 맛이 없는지.. 암컷과 수컷은 어떻게 구별하는지, 게딱지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다리에서 살을 통째로 발라 먹으며
왜 게맛살이 그렇게 생겼는지 알겠다는 아이,
꽃게 다리에 있는 가시에 손이 찔려 놀라는 아이, 아무 소리 없이 게살을 조용히 바르는 아이,
밥은 안 먹겠다 꽃게만 먹겠다 우기는 아이. 모든 아이들 손에 다 같이 들려 있던 꽃게. 그날 저녁은 2킬로그램의 꽃게 덕에 모처럼 화기애애했다.
너의 희생으로 우리가 이렇게 즐겁다면 매일 저녁에만 이라도 우리의 식탁에 올라와 주기를 잠시나마 바랐던 엄마. 만일 매일 2킬로그램씩 우리 가족이 먹어치운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의 씨가 마르지는 않을까?
여기서 끝나면 좋겠다. 화목과 단란함 가득으로 그날 저녁 만찬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면... 그러나 반전이 있었으니...
문제는 국물이었다. 게만 신선하면 국물에 별다른 양념을 안 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국물에서 비린내가 많이 났다. 살아있는 꽃게를 잘 씻기 힘들어 대충 씻었던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을까... 그 국물이랑 게를 같이 먹으라고 국물을 부었더니... 비린내가...
게는 이렇게 저렇게 다 먹기는 했으나... 손으로 껍질을 계속 만지작거렸던 몇 명은 몇 번을 씻어도 계속 나는 비린내를 어쩌지 못했고, 잠자리에 누운 아들은 손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라며 "엄마 손에서 게 비린내가 나요" 하며 웃었다.
아마도 이후 얼마간은 다시 게를 찾지 않지 싶다.
그러니 게의 씨를 말리지 않아도 된다. 괜한 걱정 했다. 화려했던 저녁 식탁 뒤 남은 것은 빈 껍질들과 비린내. 자신의 살을 다 내어 우리 가족의 허기를 채워 주었건만 비린내로 모든 점수를 다 잃었으니 꽃게 자신은 허무하다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