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일상 에세이

by stray

오랜만이다. 혼자만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갔다 왔다. 거창하게 말해서 여행이지 그냥 지인들의 모임에 가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던 것뿐이었는데 잠 못 들고 설쳤다. 새벽 3시 20분까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잠시 잠들었는데 어렴풋한 새벽빛에 화들짝 놀라서 깬 시간이 새벽 5시 20분이었다. 모임에 대한 설렘과 그 전날 오후 4시에 용감하게 먹은 커피 때문이 반반이었다. 길거리 카페에서 내려준 아메리카노의 위력은 참 대단했다. 2시간밖에 못 잤어도 대낮같이 정신이 맑았다.


뒹굴거리다 보니 새벽 6시. 이왕 눈 뜬 김에 밥이나 해 놓고 가야겠다 싶어 띵한 머리를 세우며 일어섰다. 서둘러 귀리를 불리고 그 틈에 계란찜을 하려고 찜기에 물을 넣고 끓였다. 계란찜이라도 있어야 아이들이 아침을 먹을 것 같았다. 전날 밤에 남편이 아침은 토스트라고 아이들에게 말하자, 아이들은 아침부터 빵을 먹기 싫다고. 아이들을 위한 밥은 내가 차려놓고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계란찜은 모처럼 외출을 계획하는 아내를 위해 아이들 끼니를 챙기려고 휴가까지 낸 남편을 위한 아내의 최소한의 배려였다.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역에서 아침 7시 18분 출발. 기차 안에서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책도 읽고 창밖도 두리번거리며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다. 이 얼마만의 여행이런가. 여유롭게 창밖을 즐긴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기차는 빠르기도 했다.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천안 아산 역에 도착하니 9시 37분. 지난 1년 반 동안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 책 읽고 글쓰기를 돕는 엄마들의 모임에 참여하며 책도 읽고 연구하고 발표도 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으로 모임을 가진 것이다.


모임 장소로 이동하며 나를 마중 나온 엄마와도 온라인으로만 보다가 처음으로 얼굴을 대면했다. 아이 셋인 엄마였다. 처음엔 서로 서먹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모임 장소로 이동하여 다른 엄마들도 만났다. 다들 온라인보다 예쁘고 생기 있었다. 처음으로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과 대답을 중심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가 다시 모임 장소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봇물 터진 것처럼 술술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다들 오프라인 모임에 목말라 있었나 보다. 엄마들의 수다와 웃음은 끝이 없었다. 나이나 관심사가 다르지만 다들 엄마로서 아이들 양육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하는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반갑고 즐거웠던 하루는 엄마들의 수다와 함께 어찌어찌 가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지나가는 시간에 아쉬워하며 다음 모임을 기약하고 헤어져 다시 기차역으로. 5시 23분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통로에 앉아 있었다. 내 오른쪽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기차의 소음보다 크게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그런데 통로를 가운데 두고 내 왼쪽에 있던 젊은 남자 청년은 내 오른쪽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끝없이 한숨을 내쉬고 오른쪽을 쳐다보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다가 급기야 나보고 옆의 아저씨를 조용히 좀 시켜 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뭐라고. 코 고는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잘 때 코를 곤다고 깨워야 한다면 기차에서 누가 마음 놓고 자겠는지. 오히려 기차에서 움직이는 동안이라도 피곤한 자가 마음 편히 잠을 청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좀 주무셔야 삶의 고단함을 이기지 않으실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가 좀처럼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자 그 청년은 직접 아저씨 가방이 놓여있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아저씨를 깨워보았다. 내 옆의 아저씨가 전혀 깰 기미가 안 보이자 귀를 막으며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힘드시면 저쪽 빈자리로 잠깐 자리를 옮기시라고 했다. 그건 싫은지 포기한 듯 그저 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루 동안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하루를 정리하며 생각해보니 기차로 오가며 모임 사람들을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나눈 이야기 생각도 났고, 오는 기차 안에서 짧은 시간 만난 내 양 옆의 두 남성도 생각이 났다. 내 왼쪽에 있던 남학생은 꼭 엄마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해도 안 해주면 화내는 내 아들 같기도 했고. 내 옆에서 세상모르고 코 고는 아저씨는 얼마나 삶이 피곤하시면 저렇게 기차가 떠나가라 코를 골까 안쓰럽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세상은 참 정감 넘치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시간. 하루 동안 기차 덕을 많이 봤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이 편리한 도구가 없었다면 이렇게 좋은 시간을 하루 동안에 가질 수 있었을까. 새삼 기차에 감사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