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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Jun 19. 2022

매실 담기

일상 에세이

매실이 익는 계절이 왔다. 결혼 후 거의 매해 담아왔던 매실청은 우리 집 단골청 재료이다. 나는 결혼 후에 매실청이란 것을 처음 접했다. 어릴 적부터 배가 자주 아팠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살았었다. 자주 배가 아프다는 내 말을 들은 시어머님께서는 매실청을 주시며 물에 타서 마시라고 하셨다. 평생 배 아프며 살아왔는데 매실 먹는다고 뭐가 좋아질까 반신반의하며 밑져야 본전이지 하며 물에 타서 마시곤 했는데 정말 배가 안 아프고 속이 편안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실은 우리 집에서 끊이지 않고 볼 수 있다. 설탕을 넣어야 하는 곳에는 매실청으로 대신하는 우리 집 음식은 설탕을 많이 넣는 요리법을 선호하는 사람들 입맛에는 무미건조할 수 있다. 그래도 아이들 입맛은 엄마가 어릴 적부터 길들이기 나름이란 생각으로 매실로 단맛을 내와서 그런지 우리 집 애들은 그런 맛에도 그냥저냥 집에서 만든 음식들을 잘 먹는다. 다행이다. 그리고 매실은 우리 집 감미료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고기류를 잴 때 설탕 대신 쓰면 단맛도 증가하고 고기의 풍미를 좋게 해 주니 일석이조이다. 그리고 각종 김치류에도 매실을 넣는다. 여름에는 오이를 얇게 잘라 굵은소금 뿌려 물 나오면 매실을 자작하게 부어 매실 오이를 만들어 냉장고에 두고 먹어도 시원하니 맛있다.


청을 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유리병을 열탕 소독 후 설탕만 재료와 함께 1대 1 비율로 넣어주면 끝이다. 그런데 재료의 양이 많아지면 병도 커지고 설탕도 많이 필요해서 무게가 많이 나가 들기가 힘든 면이 있기도 하다. 매실을 담을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씨 빼기이다. 우리 집에서는 매실씨를 분리해 베갯속으로 쓴다. 씨에서 독이 나온다고 해서 예전에는 매실을 담고 한 달 후 매실 건더기를 그냥 버렸다. 하지만 버리면서도 아까운 마음이 들어 매실에 관해 더 알아보니 매실 건더기가 참 좋은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씨와 분리한 매실 과육은 통에 담아 두었다가 반찬 없을 때 고추장과 참기름 넣고 통깨 조금 뿌려 내면 매실장아찌가 된다. 또 유부초밥 만들 때 잘게 다져서 넣을 때도 있다. 과육과 분리한 매실 씨는 베이킹 소다 넣고 끓여 고무장갑 끼고 박박 문질러 씨에 남아있는 열매 찌꺼기들을 깨끗이 씻어낸다. 그리고 햇빛에 널어 잘 말려 베개에 넣는다. 매실 씨 베개가 숙면에 좋다 해서 매실 담을 때마다 씨를 분리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씻어낸 씨를 모아도 얼마 안 되어 베개가 낮아 잘 때 조금 힘들었다. 몇 년에 걸쳐 씨를 모으니 쓸만한 정도의 높이가 되었다.


올해   만에 매실을 담았다. 예전에 20킬로그램을 담아 놓았기 때문에 아직도 매실이 많이 남아 있어 할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매실은 시간을 들여 숙성시켜 먹어야 하기 때문에 올해엔 담아야   같았다. 매실이 배달되어  날은 금요일. 다음  매실을 담을 생각으로 남편은 막내를 동반해 매실을 씻어 채반에 받쳐 말려 놓았다.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고 9시가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매실이 다음날이면 너무 익어버리겠다고 하며 남편이 매실을 잡고 앉아 씨를 분리하고 있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매실이 16킬로그램. 남편 혼자는 무리인지라 나도 칼을 들고 씨를 분리하기 시작. 우리 주위를 맴돌던 아이들이 하나 둘 쓰러지며 잠들 때까지 남편과 나는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 떨며 흥겨웠다. 그러다 새벽 2시가 넘자 머리가 아프고 정신은 헤롱헤롱. 칼은 자꾸 내 손 쪽으로 미끄러지고 손은 쓰리고 아프니 2시 30분을 마지막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정리해 3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의 수고로 앞으로 몇 년은 매실 걱정 없이 지낼 테다. 해가 갈수록 일은 더디고 힘이 들지만 일을 해 놓고 나면 뿌듯하기 이를 데 없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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