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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May 26. 2022

볼링

일상 에세이

학교 친구들과 볼링을 치고 온 아들이 기세 등등했다. 초등학생 시절 아빠와 함께 볼링장을 가서 아빠에게 폼을 배운 이후에 처음 간 것인데 생각보다 점수가 높게 나왔단다. 상대팀과 음료수 내기를 했는데 음료수를 얻어먹은 일등 공신이 되었다고 한껏 자신의 공력을 자랑했다. 저 허세는 누굴 닮은 건지.. 그러고는 아들은 쉬는 날 우리 가족 다 함께 볼링 한 번 치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 볼링 같이 치는 게 뭐가 어렵겠니."라고 말은 했으나 나는 볼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볼링은 결혼 전 청년시절에 몇 번 친 기억이 다다. 그 시절 갈지 자로 휘청대며 공을 굴리면 바로 또랑으로 굴러가던 공 덕분에 핀을 쓰러뜨린 개수는 가뭄에 나는 콩 수준이었다. 내가 볼링공을 든 건지 볼링공이 나를 이끌었는지. 7파운드짜리 공을 한 팔로 들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절. 내 팔은 공의 무게를 견디기엔 너무 가녀렸고 공은 내 팔의 힘에 비해 너무 무거웠다. 7파운드가 3.18kg이라고 하니 그리 무거운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아들이 날 때 3kg이 좀 넘었었으니 나는 들지도 못하던 볼링공 무게만 한 아들을 안고 키웠던 거였다. 아이들을 키우며 팔은 점점 두꺼워졌을 뿐 아니라 날렵하던 몸도 둥글둥글해진 지금은 그때 같진 않을 거였다. '7파운드 볼링공쯤이야. 한 번 가 보지 뭐.' 엄마가 볼링핀을 좀 맞춰야 체면이 좀 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과감히 내려놓고. '아들, 네가 기쁘다면 엄마가 뭘 못해주겠니. 맘껏 망가져 주마.' 하고 모처럼 쉬는 날 아이들과 함께 볼링장에 갔다.


옆 라인은 온 가족이 볼링 선수들이었는지, 여자들은 운동선수들 입는 짧은 치마며 팔목 보호대를 하고 있었고 공도 개인 공인 듯 남달라 보였다. 거기다 공을 굴리기만 하면 모든 핀을 다 쓰러뜨리는 팀이었다.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볼링장에 가 본 적이 없으니 아이들도 볼링장은 낯선지 옆의 팀만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관객 모드로 옆의 팀 하는 것만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우리 라인도 점수판이 켜지고 핀이 내려와 공을 굴려야 할 때가 되었다.


아빠가 유일한 우리 가족의 선생님. 아빠의 지도하에 우선 폼을 익힌 아이들은 가녀린 팔에 어울리지 않는 무거워 보이는 공을 들고 몸이 균형을 맞추지 못해 기우뚱 거리며 걸어가길  걸음. 공은 언제 굴려야 하는지 박자는  맞고, 야심 차게 목표점을 향해 공을 굴렸으나 또랑으로 빠지길  . 그래도 애들이 요래조래 흉내 내며 공을 굴리다 보니 어떤 때는 스트라이크도 나오고 어떤 때는 스페어 처리도 하고. 그런데 정작 볼링을 치러  함께 가자고 했던 아들은 신발이 미끄러운지 계속 미끄러지고 공도 또랑으로 자꾸 빠지고. 볼링  게임에 실패가 많으니 마음이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보였다.


아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반대로 전혀 기대감 없이  볼링장에서 나는 의외의 성적을 거뒀다. 이젠 7파운드 무게도 그런대로 들만했고 목표점을 바라보며 공을 굴릴  있는 여유도 생겼다. 아이를 키우며 튼튼해진 팔과 몸은 볼링을   있을 만큼의 힘을 길러 주었나 보다. 내가 아이들을 기른다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나를 길러  격이다. 엄마는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존재이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엄마 되도록 기르는 존재다. 엄마와 아이들은 상호 보완적 관계랄까.


하여간 그날 아들로 인해 볼링을 치게 된 우리 가족은 이후에도 종종 가족끼리 볼링을 치러 가게 되었다. 나는 점점 더 볼링이 좋아진다. 공에 맞아 핀이 쓰러지는 소리도 경쾌하고 핀에 공이 맞으면 목표하던 것을 맞췄다는 쾌감도 느껴진다. 무엇보다 볼링 값 계산하러 갔던 남편이 해준 이야기가 나로 자꾸 볼링장에 가고 싶어 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계산하던 볼링장 언니가 멀리 있던 나를 학생인 줄 알고 가격을 학생가로 해 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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