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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Jul 10. 2022

다 이유가 있더라

일상 에세이

수박 한 통을 샀다. 반통은 냉장고에 넣고 반통을 또 잘랐다. 반은 또 냉장고에 넣고 남은 수박을 먹는데 수박의 붉은색이 점점 사라져 갔다. 문득 궁금해졌다. 수박은 어디까지 먹어야 하는 걸까. 붉은 부분까지? 아니면 하얀 부분까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수박은 붉은 부분까지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수박 하얀 부분의 맛이 입에서 느껴지는 것이 싫었다. 하얀 부분까지 먹으면 수박의 달콤한 맛을 오이맛으로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하얀 부분에서는 동네 목욕탕에서 오이 마사지하시는 아줌마들에게서 나는 뜨뜻미지근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흰 부분이 나오기 전에 얼른 다른 수박을 집어 먹곤 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수박을 하얀 부분까지 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른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보시면 '수박을 왜 그렇게 먹냐' '하얀 부분까지 싹싹 먹어라' 하셨다. 그래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세계명작동화 <홍당무>에는 수박과 관련된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홍당무의 가족들이 수박을 먹고 있었다. 르피크 부인은 홍당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수박은 없어. 게다가 넌 날 닮아서 수박을 싫어하잖니?" '그럴지도 모르지' 홍당무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누나와 형이 다 먹을 때까지 수박을 못 먹는다. 엄마는 가족이 먹고 난 수박껍질을 토끼에게 가져다주라고 홍당무에게 말한다. 토끼에게 수박껍질을 가지고 간 홍당무는 수박씨는 토끼에게 주고 접시 바닥에 남은 물은 자신이 다 마신다. 그리고 접시에 남았던 수박 물이 포도즙 같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홍당무는 가족들이 먹다 버린 수박 껍질에 붙은 붉은 부분과 하얀 부분까지 다 먹고 토끼에게는 초록색 부분만 남겨 준다.


홍당무 엄마 르피크 부인은 다정한 엄마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세상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홍당무 엄마는 홍당무가 자신을 닮아서 수박을 안 좋아한다고 말하며 아들의 기호를 자신이 정한다.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홍당무가 수박을 싫어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고 엄마가 정해주는 기호를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홍당무는 엄마와의 논쟁을 피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엄마에게 말해보았자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의 빠른 눈치로 알아챘고 짧은 인생을 통해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엄마에게 자신의 기호를 말하지 못했을 때와 달리 토끼와 함께 있을 때는 매우 주도적으로 접시에 남은 수박 국물을 마시고 수박의 남은 붉은 부분을 처리한다.  


콩을 안 먹는 아이나 뭇국을 싫어하는 아이도 나름의 이유가 다 있다. 버섯도 그러하다. 그리고 어른들이 뭐라고 해도 아이들은 자신의 이유 있는 소견에 따라 일관성 있는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내가 옛날에 수박 흰 부분을 안 먹었을 때처럼 말이다. 어른들은 종종 그것을 아이가 고집이 세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처럼 말로 어른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일일이 설명하지 못해도 아이 나름대로 자신의 행동에는 이유가 다 있다. 또 홍당무처럼 어떤 아이가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다 해도 그것이 그 아이 본연의 모습은 아니다. 아이 홀로 있을 때 그 아이 본연의 모습이 나온다.


아이들이 클수록 아이들이 엄마의 존재를 그림자처럼 여긴다는 생각이  , 아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내버려 두기 위해서는 엄마 나름의 여유로운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게다가 아이 나름의 이유를 헤아려 보는 역지사지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홍당무의 르피크 여사를 통해 나도 혹시 저런 모습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는  역시. 그래도 아이들이 수박 먹는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면 그런 점에서 만큼은 '적어도' 우리 엄마들은 홍당무 엄마처럼 아이를 키우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홍당무> 아이의 성장을 이야기해주는 동시에 엄마  자들이 자신들은 '적어도' 그녀 같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많은 엄마들에게 당당함을 더해 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을  듣는 아이의 본심은 아이가 홀로 있을  나온다는 것을 엄마  우리는  짧은 이야기로 미루어   있게 된다.


수박을 먹을 때마다 어른들의 소리를 뒤로 하고 붉은 부분에서 멈췄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우리 집에도 수박을 먹을 때 나와 똑같은 아이들이 있다. 애들은 여지없이 붉은 부분까지만 먹는다. 애들은 다 똑같은가 보다. 나도 가끔 내 어렸을 적에 듣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말하곤 한다. '수박을 왜 그렇게 먹냐, 하얀 부분까지 싹싹 먹어라.' 그래도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리고 붉은 부분이 거의 사라지는 지점 즈음까지 먹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남은 그릇에는 붉은 부분이 아직도 많이 남아 뒤처리를 기다리는 수박 껍질들이 널려 있다. 그러면 이제 나는 홍당무처럼 수박껍질을 하얀 부분까지 박박 긁어댄다. 홍당무가 토끼 사육장에서 먹었을 때처럼 하얀 부분에서 나오는 국물을 마시며 포도즙같이 맛있다고 여긴다. 이 아까운 것들을 그동안 왜 안 먹었을까 하면서. 시원한 수박 물들이 담뿍 담긴 흰 부분을 이제야 음미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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