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오늘은 20년 된 우리 집 아반떼가 폐차되는 날. 첫 아이의 임신과 함께 했던 그 차는 내가 결혼 전에 회사에 다니며 모았던 돈과 남편의 몇 달치 월급을 전부 긁어모아 산 것이었다. 그때 당시 우리는 차와 우리의 전 재산을 맞바꾸었더랬다. 그 차는 우리의 충실한 신발로서 여기저기를 수년간 함께 다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넷째가 태어나며 차를 카니발로 바꾸는 바람에 그 차를 지인에게 주었었다. 내가 운전을 잘 못하고 우리 집에 차 두대까지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인이 도저히 못 탈 것 같을 때까지 버티다 다시 우리에게 준 것이 3년 전쯤.
그때 폐차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남편 직장 출퇴근용으로 유용할 것 같아 수리를 해서 여태 타고 다녔다. 그런데 늙고 낡은 차는 언젠가 큰돈 들 때가 오기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브레이크 캘리퍼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고칠 것인가 폐차할 것인가 고심 끝에 차를 고치러 간 남편은 정비 센터의 아저씨 말을 따라 결국 폐차를 선택했다. 차를 폐차할 것이라고 하니 우리와 함께 했던 그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첫 아이를 낳으러 병원으로 가던 날 그 차 안에서 본 새벽 어스름은 붉은빛이었다. 그리고 아직 아기가 나올 때가 아니니 집에 다녀오라고 해서 집으로 갔다가 다시 올 때 진통을 겪으며 본 오후 4시 즈음의 하늘은 빛이 노랬다. 셋째를 낳던 날 새벽 아직도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빛나던 신호등 불빛은 선명하고 밝은 붉은빛이었다.
바다로 산으로 놀이공원으로 차 덕에 우리는 편하게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차는 여름의 태풍이나 겨울의 추위를 피할 임시 피난처요, 호수나 강으로 놀러 갈 때는 간식을 실은 간식차 역할을 했다. 차는 덜컹거리는 길 위 피곤한 아이들이 잠시 머리를 기대 쉴만한 잠자리도 되었고, 때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소리 높여 노래해도 좋을 우리만의 작은 방으로서의 역할도 해주었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그날따라 부부동반 모임이 늦게 끝나 집으로 돌아오던 길. 언덕을 지나 비탈로 내려와야 했던 찰나 갑작스러운 폭설로 눈이 쌓인 곳에서 그 차는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며 빙글빙글 돌며 썰매를 탔다. 그 안에 있던 우리는 사고를 예견했었다. 그런데 새벽 두시쯤이어서였는지 다행히 길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고 우리는 그 이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온 신경을 곤두세워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차를 몰아 집에 도착했다. 한겨울이었는데도 몸에서는 열이 났고 손에서는 땀이 났다. 그 차에서 맞이했던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크기까지 몇 년 동안 뒷자리는 카시트 고정석이었다. 카시트는 처음엔 첫째 것 하나였으나 곧 두 개로 늘어났고, 아이가 셋으로 늘자 카시트도 세 개로 늘어났다. 넷째가 태어나자 다음 차를 살 때까지는 당분간 영아용 바구니 카시트를 앞자리 조수석 발밑에 놓고 다녔었다. 우리 가족들의 처음 차였다는 역사를 지닌 차인데 때가 되어 이별이구나 생각하니 못내 아쉽고 섭섭했다. 아이들 어린 시절 운반을 담당해 주며 우리 집 캐리어 역할을 충실히 해낸 차를 생각하니 고마웠다.
남편은 어젯밤 차에 장착해 놓았던 블랙박스와 후방카메라를 분리해 내고 차 안에 있던 쓰레기들을 모아 가져왔다. 그 작은 공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짐들이 있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쓸만한 것은 쓰려고 모아 놓았다. 그런데 폐차할 때도 나름의 규칙이 있고 폐차를 결정하고 차를 보내고 나면 고철 값으로 돈이 입금된다. 못쓰는 차를 버렸는데 돈도 준다니 뭔가 공돈 생긴 기분이다. 살림에 작은 보탬이 된다.
언젠가 우리네도 이렇게 늙고 낡은 차처럼 세상을 등지고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먼 훗날이라 생각되어 지금을 허무하게 보낸다면 그날은 금세 이를 것이다. 지금도 오래된 차처럼 몸이 삐그덕 거리니 얼마 안 남은 듯도 하고.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나 나도 이 세상 떠날 때 뒤돌아봐도 후회 없고 아깝지 않은 인생 살다 가면 좋겠다.
어쨌거나 안녕, 아반떼. 그동안 고마웠다.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