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얻은 자유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를 보고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자유 작가들이라 부른다. 그들은 단지 일기를 썼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기들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그들의 일기를 책으로 출판하자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갖가지 폭력으로 얼룩졌던 자유 작가들의 일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고 그 이야기들은 결국 영화가 된다.
그렇게 탄생한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지역 학교이다. 그들이 사는 지역은 인종차별이 극심하다. 인종 간 과거에 쌓아 놓았던 분노는 인종 간의 폭력을 북돋운다. 그들은 세대를 이어 내려온 폭력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그 소용돌이 안에서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공격한다. 폭력의 가해자이지만 실질적인 피해자이기도 한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나 관심은 그들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공적 제재를 받아야 할 문젯거리 정도로만 여겨진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그들이 살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것은 총을 들던지, 아니면 도망치는 것이었다. 수많은 폭력 속에서 살아가던 그들의 삶은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 보였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학교는 또 다른 폭력을 연습하던 장소요 자신들이 가진 분노를 자신과 다른 편에 속한 그룹에게 표출하는 곳 이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그룹이 아니면 적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인종 간의 갈등, 그로 인한 분노는 폭력을 정당화시켰다. 같은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인종별로 패가 갈렸고
수업시간에도 의견 격차로 패싸움을 벌일 때가 많았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그저 골칫거리로만 여겼다.
그러던 중 학교에 에린 그루웰이라는 젊은 백인 여자 국어 선생님이 새로 부임한다. 이 선생님은 아직 아이들이 어떤지 몰랐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듯 순진하게만 보이는 에린 그루웰 선생님의 등장은 영화의 후반부가 어떻게 흐를 것인지를 보여준다.
백인들에게 상처 받은 학생들에게 백인 선생님이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비웃거나 백인 선생님들에게서 겪은 거절감과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했고 아이들의 관심을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로 이끌었다.
한 사람의 증오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희생을 낳았는지, 그 증오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그리고 그 무모한 증오의 희생양이었던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를 해 주고 안네의 일기를 읽도록 독려하여 안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한다. 그리고 홀로코스트 관련 박물관을 방문하여 직접 보게 한다. 게다가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안네를 숨겨 주었던 안네의 아버지 오토의 여비서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었으나 아이들과 함께 그것들을 넘는다. 또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이끈다.
주제를 갖고 수업을 하며 그것과 연관된 지식을 배워가는 과정은 아이들이 문제라는 벽을 함께 넘어서는 법을 배워갈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한 반에 있는 친구들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서로를 향해 분노의 주먹을 쥐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문제를 함께 해결해갈 동역자임을, 그리고 한 반의 친구들을 증오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는다.
분노와 증오는 사라지고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간 묘한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겨난 이 시점에 선생님이 이쯤에서 멈춰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을 거다. 그러나 선생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이전과 다른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실력을 갖추길 바랬다. 그러기 위해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을 가르치길 게을리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책 읽는 아이들을 격려하고 책 읽기를 장려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새 책을 사줄 계획을 세운다. 새 책을 처음 받아보는 아이들을 보는 선생님의 마음은 그저 기쁘다. 또한 노트를 주고 일기를 써보라고 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일기 쓰기가 어색하지만 자신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글로 쓰면 쓸수록 삶의 무게가 가벼워짐을 경험하고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던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펜을 든다. 그들은 이제 펜으로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게 된다. 그들이 살던 가정과 사회의 환경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글쓰기와 더불어 한결 자유로워진다. 학생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일들을 새롭게 시도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아이들은 점차 마음을 연다.
아이들은 에린 그루웰이라는 선생님을 통해 어른의 참모습을 배운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아왔던 무책임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중독에 빠져 일상을 포기한 부모들의 삶을 답습하지 않기로 결단한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이미 삶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편견과 중독,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을 대표하는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의 흉내를 내지만 그들이 보아왔던 어른들은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진짜 어른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세상의 가치와 싸우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아이들을 지키며, 내면의 분노를 다스릴 줄 알아 폭력으로 화를 분출하지 않으며 중독으로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현실의 어려움에 맞서는 자이다.
나는 내가 과거에 살아온 방식대로 앞으로도 계속 살겠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인습에 매인 생각이다. 인종차별도, 중독도, 폭력도 자신이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은 일기를 통해 자신들의 삶에서 멈춰야 할 것은 무엇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그들의 삶에서 고쳐야 할 부분들을 하나씩 고쳐간다. 자기가 시도해야 할 변화를 자신이 일구어 내는 자유. 그들이 얻은 자유는 무기가 아닌 펜으로 얻은 자유이다.
영화가 해피엔딩이어서 마음이 놓인다.
이 시대, 진짜 어른을 만나 본 적이 없어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 여길 만한 환경 속에 있는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글쓰기에 도전해 봄으로 자신들의 삶을 개혁해 나갈 의지를 가지게 되길 소원해 본다. 그들이 과거와 다른 미래를 위한 도전에 힘을 쓴다면 이 영화의 해피엔딩은 그들의 결말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이 시대에 그들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또 다른 자유의 작가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