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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Sep 24. 2020

좀...

한 단어에서 비롯된 생각

내가 아이들에게 말을 할 때 '좀'이란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 사전에서 찾아봤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1) 조금
2) 제발
3) 어지간히

과연 나는 어떤 의미로 '좀'이란 말을 쓰고 있는 걸까?

1) 조금?

숙제 조금 해라
방 조금 치워라
밥 조금 먹어라
조금 씻어라...

내가 하는 말의 의미가 조금이라는 말과 어울리나 보았더니 잘 안 어울린다.  

그럼 3) 어지간히?

숙제 어지간히 해라
방 어지간히 치워라
밥 어지간히 먹어라
어지간히 씻어라


이거면 좋겠지만...
이것도 역시 우리 집의 경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면 2) 제발?

제발 숙제해라
제발 방 치워라
제발 씻어라
제발 밥 먹어라....

우리 집에서 쓰이는 '좀'의 의미는 다름 아닌 '부탁'의 말이었다.


이것은 영어권에서 'magic word'라 불리는 'please'의 우리말 표현이 아니던가...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울 때
밥을 먹여주지 않아도,
숙제를 일일이 봐주지 않아도,
방을 일일이 치워주지 않아도,
씻겨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큰 아이들에게
부탁 내지는 간청의 의미로 쓰이는 말들 중 '좀'이란 단어가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명령형에 친근함을 더하여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강요나 협박이 아닌 부탁으로 듣도록 하는 기능이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많이 컸다.
밥을 먹여 주지 않아도
숙제를 일일이 붙들고 봐주지 않아도
씻겨주지 않아도
방을 일일이 치워주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아이들의 움직임은...
내 마음 같지 않다.


그냥...
이전처럼...
내가 먹여주고 치워주고 씻겨주는 것이 속 편하겠는데...


우리 아이들도 존중받아야 하는 유니끄한 인격체인지라...


마이동풍(), 우이독경(),
내 말이 바람처럼 아이들 귓불을 지나칠지라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듯,

소처럼 두눈을 꿈벅거릴지라도..


참을 인(忍)을 가슴에,
어질 인(仁)을 이마에 새겨 넣으며 한번 더 외치는 것이다.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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