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주일 저녁 기숙사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학교는 편의점 하나 없는 산속에 있다. 학교 매점은 주일에 열지 않는다. 아이들이 먹을 저녁을 위해 나는 점심을 먹은 뒤 바로 김밥을 싼다. 그런데 난 김밥 싸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음식을 만들 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음식보다 빠른 시간, 만들기 번거로운 음식보다 쉬운 것을 택하는 나로서는 김밥은 속도면에서나 조리 방법의 용이함 면에서 그렇게 매력적인 음식은 아니다.
물론 내가 하지만 않는다면,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거친 김밥은 다 좋고 맛있다. 하지만 사 먹는 김밥에 질릴 대로 질린 아이들이 이제는 내가 싸 주는 김밥을 싫다고 마다하지 않는다. 내 몸이 힘든 것만 빼면 김밥 싸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엄마가 싸주는 김밥으로 해결하는 저녁 한 끼가 아이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해 김밥을 싼 지 몇 주.
그런데 아무리 싸도 김밥 싸는 것이 쉽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기껏 쌌는데 썰다가 옆구리를 터뜨리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래서 김밥 싸는 것은 내가 하지만 써는 것은 세심한 남편이 맡는다. 하나라도 살려야 하기에 아무래도 덜렁대는 나보다 세심함이 한 수 위인 남편에게 맡겨야 안심이 된다. 그리고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는 것까지 남편 몫. 남편 덕에 아이들 도시락 싸는 것이 수월해진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 다른데 나는 요리를 잘하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딱히 잘하는 것을 꼽기도 좀 애매한 나란 여자. 김밥은 쌀 때마다 뭔가 어설프고 김밥 옆구리가 터지고, 재료를 빼먹는가 하면 오이에서 물이 나와 아이 가방에 국물이 새어 나올 때도 있었다고 하니, 무슨 일을 하든 더디고 어설픈 엄마를 두어 아이들이 고생이다.
그래도 그런 아쉬운 일들 겪은 몇 번 빼고는 잘 먹었다고 메시지도 보내주고 하니 그럴 때는 기분이 좋다. 뭘 해도 어설픈 엄마가 그래도 수고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도 눈치채고 있는 듯하다. 하여간 앞으로 몇 년간 김밥 싸기는 계속될 듯하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서 보낸 매 주일 저녁에는 남편과 나도 남은 김밥으로 끼니를 때울 것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집에서 싸간 김밥으로 일주일을 연다. 이처럼 집에서 싸간 김밥은 아이들과 엄마 아빠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동글동글 어여쁜 그들의 자태 그대로 아이들과 부모 사이를 동글동글하게 연결해 주는 김밥. 도시락을 맛있게 쌀 수 있는 종류의 음식이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게 여겨진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부디 건강히 지내다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