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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Nov 30. 2021

12월에 태어난 딸

일상 에세이

그날은 참 추웠다. 그런데 날짜가 12월 초라 온도상으로 그리 추운 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긴장이 극에 달해 온 떨림이 추울 때 느껴지는 떨림과 구분되지 않았던 듯하다. 난생처음 겪는 일 앞에서 몸도 마음도 그저 덜덜 떨렸다. 


아기가 세상으로 나올 때가 되었을 때, 혹시 아기가 겪게 될 가슴 아픈 일들에 내가 계속 보호막이 되고 싶었다. 차라리 아기를 내 뱃속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울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감력이 많은 남편이 아내의 진통을 대신 겪어줄 수 없듯, 엄마가 아기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몸 하나를 나눠 쓰며 함께 지낸 10개월. 아기는 그 비좁은 곳에서도 자라났다. 나는 이미 엄마였으나 아직 엄마라 불린 적이 없었고, 아기는 이미 존재했으나 아직 세상에서 불릴 이름이 없었다. 그 아기가 이제 수많은 사람들 사이 어딘가, 세상 속에서 살아내려는 첫 몸부림을 시작했다. 


10분마다 오는 통증이 가진통이고 5분마다 오는 진통이 진짜이다. 책에서 읽었던 말이다. 그런데 몸으로 직접 느끼기 전에는 가진통과 진짜 진통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었다. 이 정도면 진짜다, 또는 이보다 더한 진통이 있을까 하며 시간을 재 보아도 10분 간격. 


그래도 가진통이 시작되었으면 아기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어 병원 가서 진통을 겪으리라 비장한 각오로 출산 물품을 싸 놓은 보따리를 안고 남편과 새벽 6시에 병원으로 출발. 병원에서는 진짜 진통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며 집에 갔다 올 건지 아니면 병원에서 있을지 물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금식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집도 가까우니 남편과 나는 집으로 갔다 오겠다고 하며 병원을 나섰다. 


엄마 마음은 아기가 금방 나올까 해서 서둘렀지만 아기는 엄연히 자기가 나올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이것이 진짜 진통이겠구나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5분 간격. 눈앞이 노래지고, 별이 보였다. 병원에 다시 간 시간은 오후 5시쯤. 내 온몸의 뼈마디가 갈라지고 살점이 찢긴 후, 아기는 세상으로 나와 12월이 생일인 아기가 되었다. 


아기는 엄마의 몸을 머리로 뚫으며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을 통해 처음 홀로서기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 후 엄마의 뱃속에서 경험했던 것과 차원이 다른 삶이 펼쳐진다. 힘을 다해 젖을 먹어야 하고 걸음마도 배우며 때로는 아픔도 겪으며 자신의 걸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찬바람이 부는 12월이 오는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첫아이의 출산 경험. 그렇게 태어나 자란 아이가 나를 엄마라 부르고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오늘따라 나를 엄마라 불러주는 아이가 있고 내가 이름 불러줄 딸이 있음에 감사하다. 오늘도 내일도 걸어가야 할 그 딸의 걸음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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