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2022년 새해다. 오늘은 1월 1일. 어젯밤 우리 가족은 모두 모여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우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오늘은 어제 계획을 세운 바로 그 2022년이다. 내가 어제 결심한 올해의 목표 중 하나는 1일 1 글쓰기다. 그것은 바로 오늘 글을 써야 한다는 것. 그런데 목표를 잡은 지 하루도 안 되었는데, 하기 싫다. 10시가 넘으니 자고 싶고 글쓰기는 무슨.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꾸준함을 칭찬하는 글을 읽고 난 후, 날마다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의 실천은 내일부터이고 싶다. 그럼에도 오늘을 넘기지 말자는 생각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칭찬한다.
어제와 내일 사이 '오늘'은 내가 살아있고 숨을 쉬는 순간이다. 오늘 밤 잠이 들고 나면 내일 아침이 되어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오늘 동안 일어났던 일들은 과거가 되어버려 기억 저장고에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오늘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 놓지 않으면 오늘은 다 내 기억 속 어딘가 저장되어 있으나 꺼내 볼 수 없는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버려 잠재의식 속으로 가버릴 것이다. 만약 내가 오늘 겪은 일들을 기록해 놓는다면? 그것은 읽으면서 내 과거의 일들이 다시 숨을 쉬고 살아나도록 해 줄 것이다.
그럼 오늘 있었던 일들 중 기억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는 청소기 사건.
우리 집에서 청소기를 돌리는 사람은 노동의 대가로 1000원을 얻는다. 전기 청소기가 있는 곳은 안방. 나는 그때 부엌에 있었다. 부엌을 오가며 발바닥에 머리카락이 밟히는 순간을 참지 못한 둘째가 청소기를 가지러 안방에 들어갔다. 청소기를 돌리면 얻을 수 있는 노동의 대가를 계산한 셋째와 넷째는 재빨리 누나(언니)를 쫓아갔으나 이미 청소기는 둘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전원 스위치를 켜서 청소를 시작하려 했던 둘째의 손에서 청소기를 빼앗으려 벌어진 아들과 막내의 청소기 쟁탈전. 소리로만 들었으나 상상만으로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결국 청소기는 아들 손으로 넘어갔고 노동의 대가는 아들이 얻게 된다.
또 하나는 감자깡 사건.
어젯밤 과자파티를 하려고 감자깡 한 봉지를 조촐하게 사 왔는데, 아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아들을 배려한 아이들이 다음 기회에 먹자고 하고 오늘까지 남겨두었는데. 한 봉지를 누구 코에 붙이나. 그래서 아이들끼리 먹으라고 했다. 첫째도 자기가 낄 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양보했다. 남은 셋은 감자깡을 사이좋게 나눠 먹기만 하면 되었지만, '사이좋게'란 말이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이들 세계에서는 잘 아는 일이다. 아들 방에서 나는 소리로 짐작한 일은 이러하다.
누군가 과자를 손에 잔뜩 쥐고 먹었고, 그것을 본 다른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양심 타령을 해가며 양손에 과자를 움켜쥔 아이를 제재하기 시작하나 불가능. 남은 것이라도 나눠 먹고자 했으나, 아직도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는 과자가 부족해 멈추지 않는 아이와 그것을 제재하려던 아이 사이에서 들리는 고함 소리. 천천히 먹자고 타이르며 중간에서 중재를 하느라 바쁜 아이. 결국 삐진 얼굴로 발을 쿵쿵대며 방을 나온 아이와 남은 과자 부스러기로라도 삐진 아이를 달래고자 과자 봉지를 들고 나온 아이.
얼마 전 읽은 책, 올가 메킹의 <생각 끄기 연습> 머리말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나는 항상 차분하고 대체로 훌륭하게 행동한다. 우리 집은 눈이 부시도록 깨끗하다. 나는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켜도 절대로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언제나 침착하게 대처하며 인내심을 잃는 법이 없다. 아이들은 각자 맡은 집안일을 착실하게 해내고 정신없이 뛰어다니지 않는다. 우리 집이 나를 중심으로 착착 돌아가는 가운데 내 하루도 수월하게 흘러간다. 나는 크고 작은 방식으로 스스로 세상을 바꿨다는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잠자리에 든다. (p13)
오늘 하루 나의 삶과 대조적이다. 하루가 길다 여겨졌고, 오후 내내 머리가 아팠던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결국 나는 내 머리 아팠던 순간을 하얀 백지에 기록하며 하소연을 해본다. 내일은 오늘보다 아이들은 더 클 것이고 또 나도 오늘만큼 자라 있을 테니 내일은 항상 소망의 날이다. '자란다'는 말이 이처럼 기대되는 말인 줄 오늘 전엔 깨닫지 못했다. 오늘 밤 잘 동안도 잘 자라라. 아가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