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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Jan 03. 2022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일상 에세이

내가 어렸을 ,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사십만 살아도 좋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오십이 되면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닐  알았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보니 생각보다 인생은 짧다. 해가 지나니 나이는 저절로  살이 더해졌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알았다. 그런데 옛날  생각처럼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되는  같지 않다.


예전에 아이가 하나였을 때, 동네 마트에 갈 일이 있어 유모차를 끌고 나갔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내 뒤에서 한 아이가 '아줌마'를 계속 부르며 따라오고 있었다. 어디에도 '나' 말고는 어른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아이가 부르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계속 따라오며 '아줌마'를 부르던 그 아이가 바로 내 뒤에서 소리쳤다. "아줌마!!" 난 그 아이가 왜 나를 불렀는지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 나?" 그때 받았던 '아줌마'라는 호칭에 대한 충격은 한참을 지나도 잊히지 않았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었는데, 그 정도면 당연히 아줌마라는 말이 익숙했어야 함에도 나는 내가 불리는 호칭이 낯설었다.


그런데   , 3살쯤  아이가 나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예전에 누군가가 나를 '아줌마' 불렀던 그때처럼 "누구? ?"라고 질문했다. 아이는  머리카락  어딘가에  감춰져 있던 흰머리를 보았을 수도, 아니면  눈가의 주름을, 아니면  구부러진 등을 보았을  있다. 예전에 '아줌마'라는 호칭을 받아들이기 낯설었던 때처럼 '할머니'라는 호칭도 '' 연결 지어 생각하고 또한 마음 깊은 곳에서 받아들이기는 아직은 낯설다. 물론 호칭의 낯섦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지금은 자타공인 아줌마고 또한 할머니가 되어간다.


몇 년 전, 남편과 나는 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동네 뒷산을 오르자 했다. 남편은 등산을 위한 필수 아이템 '등산스틱'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말이 좋아 '등산스틱'이지 배달된 물건은 다름 아닌 '지팡이'였다. 그 물건을 쓰기엔 내 나이가 아직 젊다고 생각한 나는 그것을 그냥 차에 두고 다녔었다. 요즘 그 '지팡이'는 산을 올라야 할 때,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다. 지팡이 짚고 한참 숨을 고르고 서 있다 보면 다시 오를 힘이 생긴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이런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하나 하면 할머니가 지팡이 짚고 좔좔좔... ' 난 지팡이 짚고 할머니 되는 첫걸음을 띠고 있는 것이다.


아직 오십도 되지 않았는데 느릿한 걸음걸이와 검은 머리 사이로 훤히 보이는 새치, 눈가에 자리한 주름, 구부정한 등까지 합치면 오십은 이미 몸 언저리에 와 있다. 내 왼쪽 어깨는 굳어져 양팔을 쭉 펴고 올리기 힘들고 꽉 잠긴 병을 따기 어렵다. 몸이 하루가 다르게 균형을 잃어도 나 스스로 내 몸의 균형을 되찾아 줄 수 없다. 80이 넘으셨던 어떤 할머니께서 몸이 아픈 정도가 집이 날마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려니 하는 생각에 혼자 마음을 다잡는다.


그런데 모양새는 이미 할머니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나에게서 어른이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것 같은 믿음직한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내가 어른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철부지 아이가 어른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은 것처럼 내가 나 스스로를 보아도 어정쩡하다. 나이도 몸도 어른의 조건을 갖추었으나 마음이 아직 어른이 아니다. 이 나이에 말이다.


그럼 어른이란 뭘까? 내게 익숙하지 않던 호칭을 내 맘 속 깊은 곳에 받아들이며, 내 몸이 이전 같지 않음을 인식해가는 것이 어른이 되어 가는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면 나는 언제쯤 완전한 어른이 되는 것일까? 오십이 되어가고 있는 나는 여전히 모든 일에 초보 수준이고 낯설다.


'어른'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해 보았다.

'어른'의 검색 결과 : 네이버 국어사전  
[명사]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아직도 내가 어른이라 생각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위의 사전에서 보듯 나는 2.3번에서처럼 나이를 먹고 결혼도 했으나, 내가 맡았다 하는 일들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럼 '책임'을 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책임'의 검색 결과: 네이버 국어사전
'책임' (責任)
 [명사]  
1.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2.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制裁).
3. 위법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법률적 불이익이나 제재를 가하는 일. 민사 책임과 형사 책임이 있다. [유의어] 담당, , 사명

나는 나에게 지워진 의무나 부담스러운 일들을 맡아서 하기 싫어한다. 그게 문제다. 어른이 되는 첫걸음만 뗀 지금의 내게 주어지는 어떤 일들은 누구의 도움 없이 척척 해내기가 아직 버겁다. 혼자 고속도로를 몇 시간 동안 운전하기, 엄마로서 아이들과 지낼 때 소리 지르지 않고 침착하게 아이들을 지도하기, 주부로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언제나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식사 후 나오는 설거지를 제때제때 바로바로 하기, 어떤 요리든 맛있고 영양가 있게 만들어 내기, 화장실의 변기를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 등은 시간이 지나도 참 어려운 일들이다.


이 모든 것을 넉넉한 마음으로 가볍고 즐겁게 하기 위해 우선은 자리를 지키고 지속적인 노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부담스러운 일들에 내 몸과 마음을 내어 놓음이 필요할 듯하다. 그 후에야 내가 가진 능력은 강화되고 키워질 것이므로. 또 매일 글쓰기는 어른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내면의 깊이 있는 성장을 위한 시도이니 포기할 수 없다. 오늘의 글쓰기는 작심삼일째. 오늘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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