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아들과 막내딸은 개와 고양이처럼 매일 으르렁 거린다. 아들은 딸을 놀리는 게 재미있는 것 같고 딸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듯하다. 옛날에는 이런 현상이 좀 덜했던 것 같은데 동생의 키가 오빠의 키를 넘어서면서부터 좀 더 심해진 듯하다.
그러다가 심심함이 극도에 달하면 서로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를 챙기며 논다. 이 둘이 보드게임도 하고 공기도 하며 시간을 지낼 때는 집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오늘도 그렇게 놀다 보니 시간이 바야흐로 4시. 더 이상 할 게 없어진 아들은 심심하다를 연발하며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으려 한다.
내가 "오늘은 청소기 안 돌려?" 했더니 그 말을 들은 아들과 막내는 누가 빨리 달리나 시합을 하듯 안방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아들이 좀 더 빨랐는지 막내가 순순히 방에서 나온다.
우리 집에서는 청소기 돌리기 말고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 1000원이다. 노동의 강도는 청소기 돌리기가 훨씬 높지만, 음식물 쓰레기는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다 보니 격려 차원에서 값을 높이 쳐 주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자원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우리 집에서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일이다.
아들이 청소기를 차지하자 내가 막내에게 "음식물 쓰레기 버려도 1000원인데.." 했더니 눈빛이 심상치 않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던진 말인데, 마스크 뒤로 '내가 오늘은 꼭 1000원을 벌리라'는 표정과 함께 겉옷을 입고 나온 막내. 음식물 바구니를 두 손으로 꼭 쥐며 나갈 때는 울상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몸도 마음도 음식물 쓰레기 바구니도 가벼워 보였다.
막내가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올 때까지도 여기저기 청소기를 돌리고 있던 오빠. 그 옆을 뛰어다니며 -참고로 우리 집은 1층이다- 막내는 웃으며 말한다. "난 벌써 1000원 벌었는데... 오빠 아직도 청소기 돌려?" 아들은 음식물 쓰레기는 버리러 가기 싫지만 먼저 1000원을 얻었다는 말에는 '내가 저거 할걸 그랬나?' 하며 마음이 살짝 동한 듯했다.
막내는 자기 가계부를 적으며 "난 새해부터 지금까지 00 벌었다~!!" 한다. 5일 동안 일했는데 꽤 벌었다. 이전엔 내가 아이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목이 터져라 소리 질러도 움직임이 마치 거북이나 달팽이 같았는데, 집안일을 하면 용돈에 인센티브를 얹어 준다고 하자 아이들의 움직임이 날다람쥐처럼 재빨라졌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나 게임을 통해 세상을 배우니 경제 개념도 이전보다 더 빠르게 형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 유튜버들 중 어떤 유튜버가 어느 정도의 구독자 수로 얼마의 수입을 얻는지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잘 안다. 그리고 아이들은 가상현실세계에서 돈과 같은 가치를 지닌 것들로 여러 경우의 거래를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인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생기는 개념들은 경제 전반이 아닌 편중된 영역의 생산과정이나 소비에 집중된 경향이 있지 싶다. 어차피 아이들이 돈을 벌 나이가 아니니 생산과 노동, 소비의 전반을 생각할 수 있으려면 아직 좀 이르긴 하다. 그럼에도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세계는 MZ와 X세대라 불리는 그들만의 소통 방식이 있고 엄연한 그들의 생산과 노동, 소비의 현실이 존재한다.
MZ와 X세대라 불리는 요즘 아이들은 휘황찬란한 물건들이 디스플레이된 인터넷 쇼핑몰에 익숙하다. 그들은 쇼핑에 주저함이 없다. 모니터에 보이는 것들 중 자신이 맘에 드는 물건을 주저 없이 고르고 물건 사진 밑에 쓰인 가격은 그저 기록된 숫자로 인식하는 듯하다.
또 물건의 소재는 무엇이며, 그 물건의 가격이 합당한 지, 그 가치를 매기는 기준은 어떠했는지 잘 따지지 않는다. 물건을 쇼핑카트에 담아 엄마 또는 아빠의 카드로 결제한다. 물건을 보고 맘에 안 들면 반품도 별로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물건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땀 흘려 일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돈은 그저 어디선가 흘러 들어오는 줄 아는 것 같다.
예전에는 물건을 사려면 마트에 돈을 가지고 가서 물건들을 고르고 돈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언택트 시대의 소비는 점점 컴퓨터에서 사진만 보고 쇼핑하며, 이전보다 훨씬 편리해진 결제시스템으로 내가 어디에 얼마를 쓰고 있는지 감이 덜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핸드폰 없는 아이들이 없고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컴퓨터도 집집마다 몇 대씩 있다. 그런데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아무리 집에 많다 해도 그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동으로 벌어들인 대가 지불이 필수다.
아이들이 여러 사회, 문화 경험으로 경제를 익히고 돈의 흐름과 사용에 대한 여러 상식을 알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이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똑똑해진 것 같다. 하지만 돈이 그냥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알아가면 좋겠다. 돈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살 수 있고 유용하다는 것을 아는 것뿐 아니라 노동의 가치의 소중함을 배우면 좋겠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 땀 흘려 일한 대가이고 그 누군가는 그들 자신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일했다는 것을.
오늘도 아이들은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신성한 경험을 했다. 그 결과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니 역으로 내가 감사하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몇만 원 이상의 돈을 주저 없이 결제할지라도 아이들은 아직 천원도 가치 있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이다. 언제까지 통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