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브런치에서 이런 문자가 왔다.
꾸준함 자체는 어떤 성과를 보여주는 결과물은 아니다. 그저 어떤 것을 지속적으로 하는 과정이다. 그 단어는 사실 내게 매력적인 호감을 주거나 가슴 설레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을 생각할 때 지루한 반복의 수레바퀴 속에 나를 밀어 넣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내 인생에 꾸준하게 해왔던 것들 중 하기 싫은 일들이 많았던 탓일까. 그러나 '꾸준함' 뒤의 '재능'이라는 단어는 느낌이 좀 다르다. 지루하고 하기 싫은 어떤 것을 연상시키기보다 인생을 살 때, 꼭 필요한 어떤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나는 인생에서 남들보다 재능 있는 무엇을 가졌다고 생각해 본 적도,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저 할 일을 하며 자리를 지키는 인생을 살았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누구든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일을 해냈을 뿐, 내가 가진 재능으로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자리에서 그 영광을 누려본 적도 없다. 그래서 재능 많은 사람들을 보면 '내가 갖지 못한 어떤 것을 그들은 가지고 누리고 있으니 참 좋겠다'는 부러움 반, 한 편으로는 '왜 저 사람만 저런 재능을 가진 걸까'라는 시기 반이었다.
그런데 위 글을 받은 나는 꾸준함을 통해 이루어 가고 싶은 어떤 목표나 과정을 생각하기보다, 그 꾸준함으로 낼 수 있는 어떤 성과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위의 글을 읽었을 뿐인데, 내가 마치 꾸준함으로 이미 재능을 얻었고, 그 결과 책을 낸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꾸준함을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다른 말인 노력, 인내, 고통, 좌절 같은 단어가 아닌, 그로 인해 얻게 될 콩고물에 먼저 마음이 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들여야 할 어떤 노력을 배제한 상태에서 얻게 되는 콩고물은 내 삶 속에서 일종의 덫이 되게 마련이다. 여우와 고양이의 말을 듣고 금화를 땅에 묻어 금화 나무를 통해 몇 배의 금화를 얻고 싶었던 피노키오처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알림글을 보니 내가 집중해야 할 단어는 '재능'이나 '책 내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얕은 문해력으로 인한 비약의 결과였다. 꾸준함으로 얻게 되는 콩고물에 마음 쏠림이 아닌 "자주 이야기를 써달라"는 이야기로 들어야 했다.
내가 쓴 이야기로 내가 어떤 재능을 얻게 되거나 그로 인해 책까지 낼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은 그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루어내야 하는 '꾸준함'인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꾸준함은 영혼의 흔들림을 막아주는 일종의 닻과 같은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축구선수 이영표는 <생각이 내가 된다>라는 그의 책에서 "재능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노력과 인내, 고통과 좌절을 친구 삼아 천천히, 묵묵히 나아가면 된다. 그 시작은 지극히 작은 것이면 충분하다.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매일매일 한 걸음씩 걸으면 된다. 우리가 좌절하는 이유는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 이영표 <생각이 내가 된다> (p38)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 글쓰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