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표를 끊었다

여행 이야기 1

by stream

2024년 10월 29일, D-64

우리 가족 첫 유럽 여행 비행기표를 끊고 내 최대 관심사는 내가 잘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거다.

집에서부터 기차와 버스, 공항과 비행기.

일단 안에 들어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다시 나올 수 없는 폐쇄된 공간.

자진해서 들어가지만 목줄에 꿰어 끌려들어 가듯 발은 자꾸만 뒤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나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공간에 오랜 시간, 비행기만 해도 경유지를 포함하면 총 17시간을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만 한다.

파리와 스페인의 어떤 멋진 모습을 기대하는 것보다 보름 동안의 여행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가 제일 관심사라니.



귀촌하여 시골 생활을 시작한 지 28년.

남편이 직접 지은 집은 사방에 창이 있다. 하루 종일 집안에 있어도 바깥에 지나가는 하루의 빛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 뒷산 상수리나무에서 낙엽이 가을바람에 후루룩 떨어져 나가 공중에 한가득 군무를 추는 풍경이 통창 가득 펼쳐진다.

봄날 향기로운 아카시아 꽃향기도 열린 창으로 풍겨 들어온다.

마당에 나가면 하늘이 가득하고 집 앞에는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들이 펼쳐져 있다.

들판 건너편 산 위로 해가 지고 달이 넘어간다.

그렇게 사는데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공기가 정체되어 있고 코와 피부로 신선한 외기를 느낄 수 없는 공간에 들어서면 온몸의 세포들이 질식할 듯 헐떡댄다. 뇌는 급격하게 긴장하며 비상벨을 울려대고 나는 숨을 시원하게 쉴 수 없어 곧 죽을 것만 같다.

지난번 제주도와 일본, 태국 여행을 할 때도 몇 달 전부터 마인드컨트롤을 해야 했다. 그때도 역시 여행지에서의 즐거운 기대보다 내가 잘 견뎌낼 수 있을지가 내겐 젤 중요한 관심사였다. 곁에 꼭 붙어서 손잡아 주는 가족과 나의 뇌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호흡하는 코끝에 신경을 집중하며 폐소공포증을 잘 넘기긴 했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니 또다시 제자리다.



걸어서 3분 거리의 공방과 집 사이를 오가며 집 주변을 벗어날 일이 별로 없이 생활하다 보니 집에 너무 착 붙어버렸나. 멀리 아무 데도 가고 싶지가 않다. 우리 집을 내가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가꾸며 편안하게 집에만 있고 싶다. 굳이 돈 들이고 힘들여서 멀리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고.

딸이 엄마 아빠가 더 늙기 전에, 또 자신이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유럽을 한 번 가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제안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대학 시절 혼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유럽에서 모로코까지 3개월을 여행한 딸은 그때의 좋았던 경험을 엄마 아빠도 꼭 해봤으면 좋겠다고 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날로 자라고 있는 남편은 여행 유튜브를 날마다 즐겨본다. 남편과 딸은 뜻이 맞았다. 딸의 말을 여러 번 듣다 보니 내게도 잃어버린 여행 세포가 조금은 깨어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같이 가는데 뭐가 무섭노, 죽어도 같이 죽는데.”

란다. 그래, 어떻게 되겠지. 병원 가서 신경안정제라도 좀 타서 가면 도움이 될 지도.......

하지만, 유럽은 독일 경유한 비행시간만 17시간. 제주도는 물론이고 일본, 태국 여행과도 비교가 안 된다.

“그래, 가보자.”

했지만, 딸이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고 표를 끊는 내내 마음이 긴장되었다. 마침내 표를 끊고 무료 환불 시점도 지나버리자 오도 가도 못 하는 함정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



아, 나는 잘 다녀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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