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자주 뜨는 스텐팬을 하나 샀어.
스텐제품을 사면 필수로 연마제 세척에 공을 들여야 하는 거 알지? 그게 힘들어서 스텐 제품을 새로 사기를 꺼리는 면이 있었는데 이 제품은 연마제를 쓰지 않아 공들여 세척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알루미늄 코팅팬은 긁힘 때문에 건강에 안 좋을 수 있어 자주 바꿔 주어야 하는데 스텐팬은 영구적으로 쓸 수 있잖아. 연마제가 남을까 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니 다시 한번 스텐팬 사용에 도전해볼까 싶었어.
하지만, 스텐팬을 사용하는데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잖아. 처음의 예열을 느긋하게 해주지 않으면 음식 재료가 팬에 들러붙어 요리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리지. 몇 번 그러다 보면 포기하고 그릇장 깊숙이 넣어 버리게 돼.
또한, 코팅팬이든 스텐팬이든 쓰다 보면 매번 씻어도 뒷면에 누적되는 검은 때를 잘 제거할 수 없어서 싱크대 위에 두면 주방이 지저분해 보이고 찝찝했어.
이번에는 반짝반짝 깨끗한 새 스텐팬을 처음 모습 그대로 잘 관리해 보리라 다짐했지.
사용 설명서에 안내된 대로 예열하고 불을 껐다가 기름을 두르고 다시 불을 약하게 켜고 음식을 조리하고. 하지만 역시 쉽지 않더라. 음식은 팬에 들러붙어 모양이 엉망이 되고 나중에 세척해도 누런 기름 자국이 남았어. 뒷면도 시커메지고. 싱크대 프라이팬 걸이에 산뜻하게 스텐펜을 걸어두고 싶은 로망은 금세 물 건너가버렸어.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에휴, 난 이거 안되나 보다.’하고 그릇장에 넣어버렸어. 물론 기분이 안 좋았지. 괜히 또 샀네.......
어느 날, 오랜 지인 한종 씨와 은주 씨 부부가 새로 이사한 집에 초대해 주었어. 공방에서 나무 도마를 만들어 선물로 들고 갔지.
새로 이사한 집은 넓었어. 오래된 아파트지만 환하게 칠을 하고 대망의 식기 세척기도 들여놓아 깔끔하고 편리해 보였어.
주방에서 한종 씨가 스파게티를 준비하고 있더라. 주방에는 온갖 종류의 스탠 용기들이 반짝이고 있었어. 그러고 보니 은주 씨가 ‘스텐을 사랑하는 사람들’, 일명 스사모의 오랜 회원이었던 게 생각났어. 스텐팬 관리의 어려움을 얘기했더니 은주 씨가 팁을 알려주었어. 큰 냄비에 베이킹소다를 듬뿍 넣고 그 안에 스텐팬이나 냄비를 푹 담가서 끓이고 며칠 그대로 잊고 방치해 두면 된데. 그러다 생각나면 수세미로 문질러 주는데 자기는 뒷면(‘엉덩이‘라고 했다)까지 박박 씻어 준다고. 과연 은주씨네 압력솥, 냄비 세트와 프라이팬들은 뒷면까지 깨끗하고 반짝반짝 은색으로 빛났어.
집에 돌아와서 당장 그 방법을 써 보았지 않겠어. 새로 산 스텐팬의 누런 기름 자국을 지우다 안돼서 철수세미로 문질러서 산 지 며칠 만에 깊게 긁힌 자국을 볼 때마다 속상했는데.
큰 찜 솥에 물을 붓고 베이킹소다를 잔뜩 넣고 새로 산 스텐팬을 담갔어. 푹푹 끓였다가 한 구석에 며칠 그대로 두었지. 얼핏 보니, 탄 자국들이 일부 분리되어 둥둥 떠 있는 거야.
’ 느낌이 좋군.‘
며칠 만에 꺼내어 수세미로 닦는데 정말로 깨끗하게 닦이더라. 누런 기름자국뿐 아니라 뒷부분에 눌어붙은 검댕도 싹싹 닦여 나가는 거야.
짜잔, 새로 태어난 반짝이는 스텐팬!
긁힌 자국은 어쩔 수 없지만 주방에 걸어 두어도 뒷면이 깨끗한 팬을 갖게 될 줄이야. 이렇게 깨끗해질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더 스텐팬 사용에 도전해 볼 수 있겠어. 급한 마음에 또 예열에 실패해서 눌어붙으면 베이킹 소다 물에 푹 끓이면 되니까.
그릇장 깊숙이 처박아두었던 오래된 스텐팬이 생각났어. 새댁 시절에 당시 살림으로 꽤 비싼 걸 큰 마음먹고 사서 쓰다가 뒷면이 너무 더러워져 결국 안 쓰게 되고, 버리기는 아까워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것. 안 버리길 얼마나 잘했는지!
푹 끓여서 며칠 두었다가 꺼내어 닦고 또 닦았더니 검게 눌어붙은 오래된 때가 서서히 깨끗하게 닦여 나갔어. 얼마나 기쁘던지. 엉덩이가 깨끗해진 스텐팬들을 주방에 나란히 걸어두니 주방이 개운해지지 않겠어. 뒷면이 찝찝하던 냄비들도 차례로 꺼내어 삶았지.
스텐팬을 깨끗이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니 다른 것들도 보이더라. 뭐든 깨끗이 할 수 있는 마법의 힘. 관리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매번 새로워질 수 있다니. 약간의 흠이나 상처가 남긴 하겠지만.
삶에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뭔가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
주위를 둘러보면 버겁고 산처럼 높아 보이던 것들. 하지만 내게 관리할 힘이 있다고 생각하니 전보다 좀 더 쉬워 보였어. 맞서서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고.
스텐팬 하나를 관리하는 힘은 그릇장을 관리하는 힘으로, 냉장고, 옷장, 책상, 화분, 정원을 관리하고 마침내 내 삶을 관리하는 힘으로 번져 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