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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eam Mar 18. 2024

초상화

이렇게 살아도 되네 - 6편

 예상대로였다면, 남편이 벌어오는 초상화 수입만으로도 우리가 그럭저럭 살기에 그리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결혼하던 해, 대구에 우방랜드가 생겼다. 대구 시내와 수성 못, 동촌유원지로 분산되었던 주말 인파가 새로 생긴 우방랜드로 모조리 몰려버리는 통에 시내는 한산해졌다. 남편은 한 달에 80만 원을 벌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동료 화가들과 함께 축제장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가까운 시내 고정적인 자리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게 훨씬 편했겠지만,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도 남편에게 고달픔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조금 더 컸던 것 같다. 어쨌든 꽃이 피거나 풍경이 아름답거나 분위기가 좋은 곳을 찾아가는 거였으니까. 돈 벌면서 다니는 여행. 물론 돈을 못 벌 때는 풀이 죽기도 했지만.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은 다정스럽고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사람들이 즐거움을 찾아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제법 수입이 되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벚꽃 축제인 진해 군항제에 초상화가들은 마음이 들떴다. 겨울잠을 자듯 긴긴 겨울을 조용히 보내던 초상화가들이 어슬렁어슬렁 채비를 하고 전국에서 진해로 몰려들었다. 아름다운 벚꽃과 구름에 발을 디딘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꽃들 사이로 몰려다니는 사람들, 겨울 동안 텅 비어버린 지갑을 다시 채울 기대감! 우리는 이것을 긴급 수혈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 이젠 없는 보릿고개가 우리에겐 계절의 순환 속에 슬며시 자리 잡은 한 절기가 되었다. 남편은 초상화를 그만둔 지 20여 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도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저절로 몸이 들썩이며 진해에 가고 싶어 안달한다. 

 그렇게 고만고만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전세 계약 2년의 만료기한이 다가온 즈음, 아이가 생겼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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