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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Jan 02. 2022

베란다 정원이 내게 가르쳐 준 것

세상은 어쩌면 아름다운 정원인 것을

쑥쑥이는 정말 쑥쑥 잘 자라고 있다. 기특하다!

나는 식물을 좋아한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말이 잘 길러낸다는 말은 아니므로 여태껏 번듯하게 길러낸 식물보다는 데면데면하게 굴다 말려버린 친구들이 더 많을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기실 이름도 잘 모른다. 관심이 가면 통성명부터 하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한 예절일진대, 식물 앞에서 나는 무뢰한이 된다.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예쁘다, 예쁘다만 반복하니 백치도 된다. 굳이 변명하자면 좋아한다는 표현의 폐해라 탓하고 싶다. 좋아함의 수준과 깊이는 좋아한다는 말에는 좀처럼 담기지 않아, 쉬이 오해를 담는다고.


아무튼 식물에 대한 호감 때문에 여행을 떠나서 정원을 꼭 들러보고 산과 들을 거닐기엔 열심이면서, 정작 우리 집에서 몇 년째 꿋꿋이 살아가는 식물들에는 관심이 통 안 갔다. (무관심이 양분도 아닌데 잘 살아남아줬다.) 그런 사이에 스쳐간 식물들도 여럿 있다. 한철 아름답던 카랑코에 꽃이나 몇 년인가 유혹적인 향기로 나를 기쁘게 하던 재스민 나무 등. 어느 때에는 부지런히 화원 나들이를 하시던 엄마도 이제는 시들해져 집에 있는 산세베리아와 이름 모를 두 그루의 작은 나무를 깜부기불을 돌보듯 챙기는 상황이다. 그마저도 엄마가 아니고서야 물조차 주는 이가 없어 푸념을 이따금 속마음 장독대에서 꺼내기도 하시니.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분명 여럿인데 식물에 물 줄줄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니!”)


그러다 최근 베란다 식물 생태계에 외래종이 유입되었으니 이름부터 구릿빛 이국적인 분위기를 뽐내는, 바로 아보카도다. 발단은 이랬다. 아보카도를 곧잘 샐러드에 넣어먹던 내가 씨를  발라두었는데, 엄마는 흡사 성공적인 과학자처럼 아보카도  발아성공해버린 것이었다. (경고:  문장은 띄어쓰기에 주의 .) 먹고 버릴 줄이나 알았지, 키울 수가 있다니? 기똥찬 광경이었다. 남미의 너른 땅이 아닌, 한국의 좁디좁은 화분 속에서도 싹을 틔워주었구나! 너무도 대견해서 아보카도 씨앗에도 머리가 따로 있다면 마구 쓰다듬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보카도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자연히 나는 ‘쑥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지만 쑥쑥이라는 작명 이후로 더 쑥쑥 자라고 있다.) 좋아하기나 했지, 돌볼 줄은 몰랐던 방관적 취향의 소유자였던 나는 전에 없이 베란다 정원을 곧잘 방문하게 되었다. 여전히 품종을 모르는 식물들이 태반이지만, 품종 명보다 더 특별하게 (쑥쑥이에 이어) 든든이, 뽀득이 따위의 내 멋대로 이름을 선물하기도 했다. 쑥쑥이에게 물을 주다 든든이나 뽀득이한테도 겸사겸사 물을 주게도 됐다.


그렇게 식물에 물을 주다가 불쑥 알았다. 사람이 저마다 성격이 다르고, 개들이 다르듯, 식물도 다르다는 사실을.


아보카도는 물을 많이 마시는 친구라 나는 매일 넉넉히 물을 챙겨주려 애를 쓴다. 허나 산세베리아와 같은 녀석은 잊을까 싶을 무렵에만 물을 주곤 했는데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그랬다. 물을 주는 것은 인간의 호의겠지만 많이 베푸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어느 식물은 많은 물을, 어느 식물은 메마른 흙을 필요로 했다. 다만 어떤 식물에도 정답도 오답도 없었다. 그저 고유했다.


작은 베란다 식물원을 오늘도 조금씩 돌본다. 기세를 붙여 최근엔 작은 양철 화분에 바질도 파종하였다. 씨앗은 자기만의 온전한 세계를 깨고 들쭉날쭉한 지구 위로 싹을 틔우겠지? 제 존재를 바탕으로 토지와 햇빛의 양분을 발판 삼아 쭉쭉 뻗어나갈 것이다. 그렇기에 아름답다. 아보카도는 길쭉하게 자라나고, 바질은 풍부한 향을 뽐내며, 산세베리아는 소리 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니까. 다르다는 것. 유일하다는 것. 존재의 존엄함을 지키는 것.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삶이라는 험준한 토양 위에 두터운 뿌리를 힘차게 내리고 저마다의 고유함이라는,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풍기니 말이다. 다양함으로 존재하고 보니, 세상은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정원이었다. 어쩌면 나는 매일 눈뜸으로써 풍성한 꽃다발을 선물 받고 있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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