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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Mar 17. 2024

엄마는 모순쟁이야

대충 못 살면서 대충 살라뇨

  아직 철이 못 든 자식으로서의 도리가 하나 있다. 바로 엄마에게 읍소하기. 엄마 카드를 쓰다가 엄마 찬스를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면 이것은 진화인가 퇴보인가. 대체로 일상이란 반복적이라 특별히 읍소할 일이 그다지 많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쩌다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날은 반드시 있다. 넘어지지 않고서야 넘어갈 수 없는 날들. 10번 중 9번은 다시 몸을 일으켜 흙먼지 툭툭 털고 가던 길 가겠지만 치명적인 1번을 만난다면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는 생각에 잠긴다. 희한한 사실은 돌부리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일까. 분명히 어느 날에는 무심코 넘기던 것이 어느 날에는 붙들어 매는 것이 된다. 그런 날이 10번 있다면 9번쯤은 삼키는데, 1번은 엄마에게 털어놓던지 털어놓음 당하던지 한다.


  며칠 전도 어김없이 그런 하루였다. 늦은 밤 퇴근을 마치고, 심지어 요가까지 마치고 귀가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씻고 나온 참인데 스멀스멀 질문 하나가 피어오른다.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대체 무엇을 위하여 이런 쳇바퀴를, 그것도 이렇게 열심히 돌리며 살고 있는 걸까. 밤늦은 시간까지 요가는 왜 했으며, 잠들면 곧바로 출근이라 자기는 아까운데 안 잘 수도 없고. 무엇을 위하여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나. 굳이 부연하자면 그날에는 좋고 나쁨이 혼재했다. 그렇다 한들 근원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일상의 뿌리가 흔들릴 만큼 험난한 하루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런데도 난데없이 등장한 ’왜‘라는 물음은 8톤 트럭 뺑소니처럼 나의 정신체를 훅 치고 갔다. 무력한 감각을 안은 채 유체를 이탈하여 육체가 부단히 움직이는 일상 전체를 조망한다. 빙글빙글 도는 모양은 어지럽고, 빼곡하게 채워진 스케줄은 빡빡하고, 와중에 지나치게 성실하다. 무엇을 위해? 그래서 나는 묻는다.


“엄마, 나 왜 이러고 살까? 너무 열심히 사는 거 같은데.”


  여기서 ‘열심히’는 확실히 긍정어는 아니었다. 열심의 영역에도 과유불급은 통했다. 나는 책임과 타개의 수단으로써의 열심을 택했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속가능한 열심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했고, 일했고, 요령을 쌓았다. 덕분에 어느 때보다도 생산성 있는 무언가가 된 거 같았음에도 불구, 삶이 더없이 공허하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밑이 빠진 둑을 끊임없이 채워나가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기 위함인 것인지. 나의 이런 복잡스러운 심경을 다 들은 그녀, 너무도 쿨한 말투로 답한다.


“대충 살아.”


  살아 보니 인생 별 거 없다. 그러니 대충 즐겁게 살면 된다. 너무 애쓰지 말고, 너무 무겁게 여기지 말고. 그러면 된단다. 맥락은 알겠는데 정작 엄마 본인도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마당에 ‘대충‘이 무엇인가. 어쩌면 나보다 더 빡빡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면서 내게는 대충 살라니. 모순 아닌가. 곰곰이 ‘대충’이라는 두 글자를 읊는다. 내가 월든의 소로우처럼 삶의 골수까지 뽑아 먹고 싶은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살 수 있는 사람 됨됨이를 갖고 있지도 못한 거 같다. 엄마의 모습을 보고 덧붙이면 ‘유전적 소인’도 이런 기질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좌우간 ’대충‘은 내가 내게 베풀 수 있는 낱말이기보다 타인이 건넬 수 있는 한 줌의 위로에 가까운 듯하다. 대충 살아도 괜찮다는 말은 무책임보다 연대 속에서라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호혜로써 느껴졌다. 분명히 자식에 대한 사랑과 온기가 담겨 있었다.


  네 앞의 삶을 긴 호흡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니 당장의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급급해할 게 아니라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춰 할 수 있는 만큼씩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당장의 열심에만 골몰하지 말고 지속 가능한 차원에서의 균형점을 지켜라. 이런 말이 삶을 나보다 먼저 살아본 엄마가 내게 주고 싶은 문장들이었을 것이다. ’대충 살아‘라는 네 글자를 또 열심히 확대해석한 나.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여정도 결국은 오직 한 걸음에서 이어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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