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예 Apr 07. 2024

사바아사나는 어째서 이토록 달콤한가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요즘 요가하는 재미로 산다.


  보통 요가원에 가는 때는 늦은 밤. 퇴근이 늦으니 별 수 없다. 9시 땡 치자마자 부리나케 요가원으로 향한다. 같은 건물에 요가원이 위치한 덕분에 이동에 채 1분도 걸리지 않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요가원에 쪼르르 들어가 자리를 잡고 휘리릭 매트를 깐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숨을 고르며 오늘의 아사나(*요가 자세)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마스테.




  지금은 제법 요가에 진심인 편이지만, 요가는 유연한 사람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여러 시간을 거듭하면서 알게 되었다. 요가에는 잘하고 못 하고가 없다는 사실을.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을 하면 된다. 당연히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일단 시작하면 몸이 알아서 허용하는 지점을 알려온다. ’여기까지야.’ 목소리가 있다면 필시 다정하리라. 그러니 요가는 운동의 차원을 넘어서 오롯한 대담이라고도 하겠다. 나 스스로와 나누는. 연습을 할수록 구사할 수 있는 표현이 늘어나는 기쁨도 따라오는 건 덤이다. 이건 갓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가 새로운 단어를 조물조물 말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경이로움과 닮았다.


  그렇게 몸이 어디까지 나를 데려가는지를 체험하다 보면 ‘정직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정말이지 매 수련에 열심으로 임한다. 가끔은 이런 자신이 쓸데없이(?) 비장하게 느껴지는 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사실인 걸.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최선을 다해 온갖 동작을 시도한다. 하지만 여전히 서툴고, 못하는 자세가 많다. 한다고 하지만 엉터리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내 내고, 시늉하고, 1mm씩이라도 맞춰 보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몸을 비틀고, 쥐어짜고, 뽑아내고, 밀고, 당기고, 구부리고, 뻗고, 버틴다.  


  그러나, 다시 고백하건대, 이러한 열심이라 해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최대치인 것도 안다. 그러니 스스로를 보채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요가를 하면 내 자신이 무척이나 진실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본다. 이제 나는 1시간짜리를 30분 안에 하려고 성급하게 들지 않는다. 30분짜리를 1시간 동안 쉬엄쉬엄 하려 잔꾀도 안 부린다. 정직하게 1시간 분량을 딱 1시간 안에 소화해 낸다. 이 '더도 덜도 말고'에는 어떠한 '허풍'도 '축소'도 없다. 1시간과 요가 시퀀스를 맞바꾸면서 모두 제대로 값을 쳐 준 셈이다. 윈윈이다.


  또다시 고백하건대, 이런 정직함을 높게 사는 까닭은 내게 ‘도둑놈 심보’가 내재해 있음을 알아서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어쩌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이루고 가지고 싶어 한다. 이는 ‘최소 비용과 최대 이익’이라는 이념에 부합한다. 예를 들자면 하루 공부하고 수능 만점 받기라거나, 3일 만에 10kg 빼기라거나, 일주일 일하고 10억 받기 같은… 이러한 ‘도둑놈 심보’에 ‘효율성’이라는 멋스러운 단어를 덧입히면 굉장히 그럴싸한 느낌을 주면서 명확한 분간은 어려워진다. 내가 효율성을 추구하는 건지, 도둑놈 심보가 튀어나온 건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등가교환의 요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어느 쪽의 가치도 훼손하지 않고 존중하는 느낌은 꽤나 산뜻하고, 신선하며, 충만하다는 사실을.




  요가의 마무리는 언제나 사바아사나(*송장 자세)이다. 매번 수련하는 동작은 달라도 끝은 늘 똑같다. 그렇게 매트 위에 몸을 펼치고 눈을 감고 있노라면 나는 ’방금 한 생애를 살아냈구나‘ 하고 생각한다. 요가는 삶과 동질한 구조를 가진다. 태동하고 약동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다. 중간에 잘할 수 있던 것도, 영 할 수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별로 아쉽지는 않다. 송장이 된 상태에서는 지나온 삶에 대한 어떤 회한도 없이, 그저 길고도 짧은 휴식을 만끽할 따름이다. 모든 순간이 최선이었음을 달콤한 죽음에 이르러서야 알아채게 된다. 그렇게 한 생애가 저문다.


  영겁이 지난 뒤. 허공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부활할 시간이다. 다음 수련 때는 어쩌면 좀 더 멀리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라도 좋고.


  나마스테!


이전 03화 냉이 페스토: 겨울 그리고 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