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and now
서점의 여행 코너에 자석처럼 붙들리던 때가 있었다. 여행을 당장 떠날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패턴은 늘 같다.
일본, 유럽, 아프리카 등 각종 책자를 집어 들고, 내일 떠날 사람처럼 온갖 정보를 훑는다.
지역 맛집은 어딘지, 꼭 가야 하는 명소는 어딘지, 지역 명물은 뭔지를 살핀다.
사실상 막상 도착하기 전까지는 진짜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길 없는 미지의 공간들을 마음껏 그려보는 거다. 그 결과, 상냥한 마스터가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나 통창으로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재즈바나 장인 정신으로 제빵을 하는 베이커의 빵집 내지는 몇 천 년의 역사가 깃든 목조 주택 같은 것이 내 안에서 재창조되기 시작한다. 이국적이고 낭만적이고 실로 완벽에 가까운 어떤 세계를 만든 셈이다. 반면 현실 세계에는 언제나 나름의 고충이 있다. 그럴 때마다 서점을 찾는다. 더 열심히 여행서적을 뒤적인다.
운이 좋게도 어떤 일들은 상상에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몇 번인가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났으니까. 다만 나의 여행은 책자에서 짜인 것처럼 효율적이진 못했다. 일상을 흡수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탓이다. 아무래도 그 동네에 원래 살던 사람처럼 행세하고 싶은 욕심이었지 싶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유명한 명소를 구경하는 일은 뒷전이고, 여행자들에게는 덜 알려진 도시의 구석구석에 들어가는 일에 품을 들였다. 스카이타워에 올라 야경을 바라보기보다 시장에 들러 약동하는 생명력을 한껏 느끼는 식이었다. 이런 것도 취향인 줄로만 알고 몇 번씩 반복해 경험하다가 불쑥 생각했다.
나라는 인간은 분명 여행을 좋아하는 거 같기는 한데, 그것이 어쩌면 현재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닌가. 다른 일상에 놓이고 싶은 속내를 꽁꽁 감춰두다가 여행지에서만 몰래 꺼내보는 것 같았다. 어떤 탈출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여행. 알게 모르게 그런 의미를 담아 여행을 하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었다. 그런 여행이 좋지 않을 리 없었다. 해방감에서 비롯되는 행복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었다. 오히려 다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면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꼭 여행지에 가서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행복이란 비현실적인 것 아닌가? 그런 의문을 품은 찰나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tv에서 이런 대목이 튀어나왔다.
이동진 평론가: 기본적으로 자기가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일이나 관계에서 행복해야 그 사람이 행복하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행복한) 시간을 1년에 한 번 쓸 수 있는데, 그 시간만 행복하면 그건 행복이 아니고 저는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대표적으로 여행. 여행 중에서도 먼 곳.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내가 이렇게 일하기 힘든데, 이 월급 꼬박꼬박 모아서 내년 여름에 사랑하는 사람과 혹은 친한 친구와 볼리비아로 가서 우유니 사막을 갈 거야!" 이런 게 있다고 쳐봐요. 그럼 1년 반을 막 돈을 모아요. 그래서 갔어요. 가면 너무 좋죠. 그러고 나서 돌아오면? 거기 (여행지)에서 좋았던 경험은 일회적 쾌락이라고 생각하지 반복적인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행복은 반복할 수 있어야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잠 빼고 내 인생에서 사용하는 시간의 절반이상을 (직장생활에) 넣는데, 이 시간을 돈만을 위해서 보내고, 1년에 한 번 가는 우유니사막에 가는 돈을 위해서 그 (직장생활의) 괴로움을 참는다? 그런 사람은 행복할 수 없죠.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의 일상을 다른 일상으로 치환하면 더 큰 행복이 온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몇 주쯤 원하는 도시에서 살아보며 느꼈다. 아무리 낯선 공간도 오래 머무르다 보면 결국은 또 다른 일상이 된다는 사실을. 그 일상에 익숙해지면 또 다른 낯섦을 찾아 끊임없이 떠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이 블록을 넘어가면 라떼가 특출난 카페가 나오고, 여기서 10분을 걸어가면 유명한 오므라이스 가게가 있고, 오후 3시쯤 되면 어디 베이커리에서 무슨 빵이 구워져 나온다는 사실 따위에 적응하는 순간 더는 처음과 같은 도파민을 안기지 못하는 노릇이었다. 제아무리 전 세계 1등 맛집이라 하여도 코앞에 있으면 귀한 줄 모르는 법이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어디에 있든,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지구 어디에 간다고 해도 행복은 붙잡을 수 없는 신기루라는 것을 말이다. 행복에 대한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있었다.
반경 몇 km 안의 생활을 하면서, 이따금 너무나 열심히 같은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때마다 떠나고 싶었다. 일상이 조금이라도 버겁거나 숨 막히는 순간이면 번번이 그랬다. 그렇게 훌쩍 떠난 곳에서 물론 비일상성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지만, 미봉책일 뿐이다. 그러니 쾌락보다는 빼곡한 일상 틈 어딘가에는 분명히 숨어있을 행복을 찾아보기로 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면 찾기가 쉽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여기에서 카페를 운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요가 수련을 할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변하는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공원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것들이 일상에 견고히 자리를 잡고 있으니 시시하게 느껴지는 때도 물론 있지만, 만약에 내가 이곳에 여행을 온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보면 특별한 무엇이 된다. 지금 여기에서 당연한 것에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보고, 낯선 것에서 낯설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일. 어릴 적 소풍을 떠나서 바위나 수풀 속에 숨겨진 보물찾기 쪽지를 집요하게 찾아내던 순간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일까. 지나치는 것도 찾아내는 것도 몽땅 내 몫이라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