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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Apr 28. 2024

애플워치의 꼭두각시라도 좋아

조금만 더 움직여보면 어때요

  다른 사람 선물 사다가 본인 선물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 있다. 내 이야기다. 그리고 그 선물은 바로 애플워치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애플워치를 모시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으나, 애플워치의 꼭두각시가 되는 일은 필연이었던 것은 아닐까. 원래 살 생각이 없었단 변명이 무색하게 그야말로 헤비 유저로 지낸 지 어언 3년 차가 됐다. 분명히 애플워치가 출시될 무렵엔 혈중 산소포화도까지 알면서 살아야 할 필요까지 있겠냐고 말했었는데. (세상일은 정말이지 모를 일이다.)

  

  이제 애플워치는 문신과도 같다. 은유가 아니라 정말 그렇다. 특히 여름이면 크게 실감한다. 팔이 햇볕에 그을릴 무렵에도 애플워치의 그늘 아래 놓인 피부만큼은 하얗다. 백반증처럼 남은 시계 자국을 가리려다 보면 애플워치를 빼고 다닐 수도 없다. 떼려야 뗄 수 없다. 일종의 선순환으로 보아야 하나..? 그렇게 일상은 애플워치에 의해 과학적으로 끊임없이 모니터링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애플워치와 함께하고 있다

  애플워치를 왜 샀느냐 묻는다면 숫자를 보고 싶어 그랬다고 답하겠다. 평소 얼마나 움직이는지, 심박수가 어떤지, 달리기 페이스는 좋아지고 있는지 등을 알고 싶었다. 내 뜻에 알맞게 애플워치는 빠짐없이 모든 순간을 기록해 냈다. 신기했다. 심장이 뛰고 있음이 새삼스러운 사실로 다가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애플워치가 당연한 존재가 됨에 따라 이상하게도 애플워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내가 애플워치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애플워치가 이 육신을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은. 주객이 단단히 전도됐다. 꼭두각시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꼭두각시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조종에 놀아나는 사람(출처: 네이버)‘이란다. 조종에 놀아난다니… 자존심은 상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실로 조종에 놀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워치가 나를 조종하는 방식은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다.

애플워치의 조종법 1

  첫째. 애플워치는 세 가지 측면으로 나를 평가(?)한다. 움직이기(kcal), 운동하기(분), 일어서기(회). 물론 목표치는 내가 설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동그란 원을 완성했냐 하지 못했냐는 하루의 활동성을 가늠하기에는 충분한 지표가 된다.

애플워치의 조종법 2

  둘째. 애플워치는 월간 도전 목표 달성 배지라는 당근을 통해서도 나를 조종한다. 애플워치는 매달 내게 나름대로 과제를 낸다. 이를테면 ‘한 달 중 운동하기 링을 15번 달성하기’ 같은 식이다. 이를 완수하면 다음 달 과제의 난이도는 상향되고, 완수하지 못하면 하향된다. 평안한 다음 달을 위해서는 눈 꼭 감고 이번 달 과제를 무시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그게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과제를 완성하면 배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 배지는 실로 하등의 의미가 없다. 밥도 국도 먹여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아놓으면 보기 좋기 때문에 모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그래서 다달이 시키는 대로 월별 미션을 완수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애플워치의 조종법3

  셋째. 애플워치는 월별 미션뿐만 아니라 특별 한정 도전 목표를 달성하면 또 배지를 준다. 그리고 이 배지는 특별 미션을 완수해야만 주는 것이라 그런지 유난히 예쁘다. 그러니 하는 수 없다. 배지를 타려고 춤을 추라면 추고, 요가를 하라면 하고, 30분 이상 운동을 하라면 한다. 그렇게 또 배지를 모으기 위해 몸을 이래저래 움직이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배지 하나 받겠다고 엉뚱한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애플워치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자각하고야 말았다.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까짓 애플워치 알람이나 배지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느냐는 지당한 말씀이 돌아왔다. 그리하여 나는 자유를 꿈꾸며 애플워치를 일부러 빼놓고도 다녀보았다. 하지만 손목에 자석이라도 달렸는지 애플워치는 금세 채워졌다. 그렇게 내 일상은 모자라든 넘치든 계속해서 관찰되고 있다.


  세상에 지구의 날이 언젠지, 요가의 날이 언젠지, 춤의 날이 언젠지 내가 알게 뭔가! 하지만 애플워치의 귀여운 농간에 놀아나다 보면 ‘무슨 무슨 날’을 핑계로 괜히 몸을 달리도 써보게 된다. ’무슨 무슨 날‘이 아닌 날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더 걸어보고 일어나 본다.

  산다는 일을 육체가 경험하는 것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면, 애플워치의 조종 아래든 뭐든, 조금 더 꼼지락거릴 수 있음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그러니 애플워치를 빼놓고 하는 운동은 운동이 아니라는 점만 빼면(?), 꼭두각시 신세도 괜찮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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