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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Sep 09. 2021

손맛

알록달록한 갯벌 체험의 맛

  주말에 가족들과 서해 바다로 나들이를 갔다. 사실 말이 나들이지, 실상은 갯벌 탐사 활동이다. 생태 체험이 필요한 나이는 아니거늘, 부모님 눈에는 마냥 어린이인지… 시간만 나면 그렇게 체험 학습을 시키고 싶어 하시니, 원! (그렇게 성실한 갯벌 일꾼 1이 등장합니다.) 단단히 선크림 바르고, 모자 쓰고, 마스크 끼고, 비장하게 호미 하나 들어주면 패션은 완성. 이제는 갯벌 속에 알음알음 숨어있는 조개를 하나씩 캐내기만 하면 된다. 되는데…


  분명 어릴 때는 걷는 것만으로도 조개가 밟히기도 건만, 요즘은 얄짤없다. 개간작업을 아무리 해도 감감무소식이다. 예전 바다는 보다 너그러웠던  같은데, 강산이 변하는 사이에 황폐해져 버렸나. 동심이 바래듯이, 바다의 마음도 달라진 걸까. 그렇다고 시니컬한 바다의 표정에 쉬이 굴복할쏘냐. 휑하니 물이 빠진 먼바다까지 부지런히 걸어 들어간다. 열심히 뒤적여본다. 나올 리가 없다.


  엄밀히 말하면 조개를 사 먹는 편이 사실 여러모로 낫다. 조개를 캐는데 들이는 노동력은 보통이 아니어서다. 그 시간에 본업을 하고, 거기서 얻은 수익으로 수산 시장에 가는 편이 (셈을 하자면) 남는 장사다. 그뿐 아니다. 조개를 캐는 일은 미래 보상마저 불분명한 막노동이다. 바다가 웃어줄지, 아닐지를 누가 알겠는가. 역시 불확실한 미래에 베팅을 하느니 현실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편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힘도 덜 들고, 얼굴이 새카맣게 탈 염려도 없고, 시간도 아끼고. 그렇게 구시렁거리고 있을 즈음 호미 끝에 턱— 하고 묵직한 마찰음이 인다. 조개다!


  탁—하는 그 감촉. 둔탁한 소음. 지금껏 뭐가 합리적이네 아니네 따지던 건 어디 가고 일단 소리부터 친다. “나 조개 잡았다!” 새침데기 같은 바다에서 얻은 조개라 더없이 귀하다. 식구들도 덩달아 신이 난다. 희망을 보았으므로. 무수한 개간작업이 재개된다. 그렇게 아무리 파도 나오지 않아서 포기하려 들 즈음이면 꼭 호미 끝에 얻어걸린다. 희한하다. 바다의 농간이란.


  정말 정말 힘든데, 이 손맛! 손맛이 문제다. 시원찮으니 그만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 튀어나오는 손맛. 엄마는 말했다. “조개가 귀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 손맛 때문에 갯벌에 오는 거야”라고. 나 역시 그 말에 십 분 공감한다. 조개를 캐는 건 다른 이유가 없다. 재미 때문이다.


  여전히 계산기를 두드리자면 조개는 사 먹는 게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갯벌에 간다. 다행히 인간은 매사에 합리적인 동물은 못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력적인 것이겠지. 인간이나, 인생이나. 어떻게 매 순간을 합리성에 기대어 살까. 그건 너무 재미가 없지 않은가? 가끔씩은 오직 재미만을 이유로 하는 일이 필요하다. 생애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여주는 경험들. 과거를 반추할 때도 떠오르는 시간은 바로 이 다채로운 무의미의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불쑥, 인생은 어쩌면 즐거움을 쫓기 위해서 짊어져야 하는 무게의 것은 아닌가 싶어졌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 행장을 갖춘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얼핏 보아서는 무용한 듯한 순간들이 종국엔 삶을 탄탄하게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좋은 추억들은 망망대해의 등대처럼, 삶에 따스한 빛을 드리운다. 그러니 더 많은 손맛을 보아야만 한다.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전히 체험 학습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맞는지도 모른다. 영영 정체되지 않고 싶다고 나지막이 소망하며 한참 갯벌을 거닐었다. 매일 성장의 여지가 있다는 가능성이, 썩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우연한 수확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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