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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Aug 04. 2021

오히려 좋아

입 안에 가만히 머금는 마법의 문장

  모처럼 점심 즈음 강남 쪽에 일이 있어 들렀다. 친구들하고 얘기하는 중에 잠실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이참에 점심이나 먹잔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럴까 싶어 친구의 점심시간에 맞추어 슬렁슬렁 잠실까지 갔다.


  어이! 반갑게 인사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한 여름인데 왜 긴팔을 입고 있니, 시원하게 입고 다녀 같은 잔소리(?)가 실컷 나왔다. 친구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기 같은 말단 회사원은 어쩔 수 없단다. 그러다가 무심코 옷도 이렇게 불편하게 입고 다녀야 하는 마당에 따로 점심씩이나 먹어도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불쑥 들었다.


 “너 점심 회사 사람들하고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왕따 되면 어떻게 해?”


  그랬더니 친구의 답이 가관이다. “오히려 좋아”란다. 물론 나 역시 직장을 다녀본 입장에서 반드시 사람들과 꼭 식사를 같이 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허나 친구가 근무하는 업계는 워낙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곳이라서 사소한 일로 괜한 미움 사는 건 아닌가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러면 더 좋단다. 이게 무슨 소리고?


  친구의 설명인즉슨 이렇다. 차라리 외톨이 생활이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고, 여러모로 편하다나? 미움받을 용기 같은 제목의 책을 곧잘 읽더니 많이 용감해졌구나…, 하며 놀렸지만 이건 자신감이지 싶기야 했다. 평소 회사 얘기 들어보면 사람들한테 예쁨 받고 있는 것이 느껴졌으니 이런 태연자약한 태도일 수 있겠지. 물론 본인은 아무렴 어떠냐 하는 미적지근한 반응이긴 했지만.


  정작 내 머릿속을 번뜩이며 관통한 건 친구의 두 마디, 바로 ‘오히려 좋아’였다. 실제로 나쁜 상황이 닥치건 아니건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 일이 어디 쉬운가. 상황이 내 마음대로 안 흘러가고 어렵기만 할 때, 오히려 좋다는 말은 어쩐지 나무에만 매몰되어 있던 시선을 강제로라도 옮겨 숲을 바라보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었다.


  오히려 좋아의 마법은 그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좋아는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이라도 내 쪽으로 끌어오겠다는 능동의 표현이다. 내가 이리저리 휩쓸리며 여기저기 치이는 게 아니라, 문제 상황의 흐름 속에서 무게를 갖고 중심을 지키겠다는 의지에의 표명이다. 또한 어떤 문제든 두 눈을 바르게 뜨고 직시해 풀어나가겠다는 결연하고도 용감한 태도이기도 하다.


  일찍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인생이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상황이 변화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가장 효과적인 변화, 즉 자기 자신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에는 거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라고.


  '오히려 좋아'야말로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문장이다. 돌이켜보면 어둠이 있을 때 별은 더 밝게 빛나고, 비가 온 다음에야 땅은 더 단단히 굳는다. 괴로움을 직면해 하나씩 들춰가다 보면 진주알 같이 반짝이는 깨달음이 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깨우쳐오지 않았던가?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을 때, 외면하고 싶을 때, 인생이 좌절스러울 때 입 안에 ‘오히려 좋아’라는 문장을 가만히 머금어본다.


  그리고 믿는다. 인생이라는 통통배가 종국에는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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