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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Jan 02. 2024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8) 내가 도둑맞은 물건

    아버지의 유서는 짧았다. 짧고 이상했다. 이상하면서도 답답한 문장이었다.

    "도둑 맞은 것을 찾아오는 자식은 다음 문서의 비밀번호를 알 수 있을 것임."

    옆에 서서 얼빠진 얼굴로 한참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던 형이 변호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도둑 맞은 게 뭔지를 알아야 찾아오던지 말던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그저 아버님이 전달해 달라고 하신 걸 전달해 드린 것 뿐입니다. 판단은 자제분들이 하셔야죠."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던 변호사가 안경을 고쳐쓰며 대답했다. 말끝에 약간의 억울함이 묻은 게 느껴졌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가 이 문서를 우리보다 먼저 보았던들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자식인 우리조차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 것을. 변호사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유산은 관련 문서와 함께 정리하셔서 금고 안에 넣어두셨습니다. 금고를 잠그실 때 비밀번호를 스스로 셋팅하셨고 저는 비밀번호를 전해듣지 못했습니다."

    왼쪽 소파에 앉아있던 동생이 내 얼굴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뭐라도 이야기해보라는 표정이었는데 나라고 딱히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어깨만 으쓱해 보이고 말았다. 내 제스쳐에 동생은 짧게 한숨쉬며 등받이에 몸을 깊숙히 기대었다. 그녀의 웨이브 진 긴 머리카락이 등 뒤에 깔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퍼머 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괜찮은가 싶었다. 동생은 외모에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어서 헤어스타일을 챙기지 않는 지금 같은 모습은 평소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포커페이스인 그녀조차 이 문서로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변호사가 건넨 USB 안에는 두 개의 전자문서가 들어있었다.




* 아버지의 유서에 적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내용. '내가 도둑맞은 물건'이라는 글감을 접하고 요즘 내가 상실감을 느끼는 대상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바로 '시간'이었다. 주변을 챙기기 위해 시간을 소진했지만 그만큼 마음의 안정감으로 되돌려받지 못한다면 그것이 '도둑맞은' 개념으로 치환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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